2 조선 후릉  개성직할시 개성시 판문군 영정리 nkmhjgesung

후릉은 개성시 판문군 영정리에 있는 1412년, 1420년의 조선 2대 정종과 안정왕후의 쌍릉이다.

정종은 태종에게 왕위를 넘기고 물러나 개성 백룡산 기슭의 인덕궁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왕후가 1412년에 먼저 죽고 1420년에 정종이 죽어 이 능에 묻혔다.

후릉은 고려 공민왕릉을 많이 닮으면서 조선시기 왕릉들의 특징도 다 갖추고 있는 무덤이다. 본래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시와 조선의 수도였던 서울을 중심으로 한 양주, 광주, 여주 일대에는 조선시기 역대왕의 무덤들이 있다. '국조오례의'(상례편)에 규정된 내용에 따라 만들어진 이들 왕릉들은 그 구조와 축조기술, 능역 조성방법에서 일련의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 조선시기 왕릉들은 뒤에 산을 등지고 양옆에는 언덕이 있으며, 앞(남쪽)은 탁 트인 평지 건너로 '안산'이 바라보이는 산중턱에 자리잡고 있으며, 여기에 여러 가지 돌 구조물들을 계단식으로 배치하였다.

맨윗단에는 봉분을 만든 다음 그 둘레에 12각의 병풍돌을 둘러 세우고, 일정한 면적에 바닥돌을 깔았다. 이 바닥돌 바깥 둘레에는 법수를 세우고, 돌난간을 설치하였다. 이 때 12각으로 된 병풍돌 혹은 난간에 12지신상을 조각하여 형상 하였다. 봉분 뒤에는 난간 밖으로 일정한 사이를 두고 동, 북, 서의 세 면에 낮은 담장을 둘러쳤다. 이 담장과 봉분 사이에 돌범과 돌양을 엇바꿔 놓았다. 앞의 한 가운데에는 북통에 받쳐진 커다란 돌상을 놓았으며, 그 좌우에 망주석을 세웠다.그 앞 낮은 단에는 봉분 앞 가운데에 장명등(돌등)을 세우고, 좌우켠에 복두를 쓴 문인과 말을 각각 돌로 조각하여 배치하였다(말이 있는 것은 고려 무덤과 다르다).

다음 맨 아래 단에는 갑옷 투구차림에 검을 찬 무인과 말을 양켠에 배치하였다. 그 아래로 약간 경사진 언덕이 계속되다가 평지에 정자각을 세우고, 그 동쪽에 비각을 세웠다. 그밖에 수라방과 재실, 고방 등을 적절한 자리에 지었다.

조선시기의 왕릉들은 대체로 이상과 같은 형식을 갖추고 있는데 그것은 공민왕릉을 비롯한 고려의 무덤 건축을 계승하면서 규모를 크게 하고 돌조각 물을 많이 놓는 방향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이와 같이 만들어진 무덤들은 다음의 네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그 첫째는 왕이나 왕비 가운데 어느 한쪽만을 묻은 무덤이고, 둘째는 왕과 왕비를 한 봉분에 합장한 무덤이며, 셋째는 따로 만든 왕과 왕비의 능을 가까이에 붙여서 나란히 놓은 무덤, 넷째는 왕과 왕비의 능을 좀 떨어진 딴 언덕에 각기 만든 무덤이다.후릉은 따로 만든 왕과 왕비의 봉분이 나란히 있는 쌍릉이다. 매 봉분 앞에 돌상과 돌등이 각각 하나씩 있다. 봉분의 높이는 3.45m이며, 직경은 7.5m이다.




역사년표Map BC -AD 1 -600 -1000 -1500 -1800 -1900 -1950 -1980-현재 (1945년이후 10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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