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 이육사(李陸史)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방울 내리쟎는 그때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내 목숨을 꾸며 쉬임 없는 날이여!

북(北)쪽 툰드라에도 찬 새벽은
눈속 깊이 꽃 맹아리가 옴작거려
제비떼 까맣게 날라오길 기다리나니
마침내 저바리지 못할 약속(約束)이여!

한 바다복판 용솟음 치는 곳
바람결 따라 타오르는 꽃 성(城)에는
나비처럼 취(醉)하는 회상(回想)의 무리들아
오늘 내 여기서 너를 불러 보노라

<자유신문(自由新聞), 1945.12.17 / 육사시집, 19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