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이 타는 가을강(江) - 박재삼(朴在森)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 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江)을 보겄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겄네.

<사상계, 1959.2>

우리에게도 이런 시가 있다는 것과 우리 말로 노래할 수 있는 이런 자연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격을 주는 세계. 그 속에 살고 있음을 감사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