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 - 감태준

바람에 몇 번 뒤집힌 새는
바람 밑에서 놀고
겨울이 오고
겨울 뒤에서 더 큰 겨울이 오고 있었다

“한번…”
우리 사는 바닷가 둥지를 돌아보며
아버지가 말했다
“고향을 바꿔 보자”

내가 아직 모르는 길 앞에서는
달려갈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때,

아버지는 바람에 묻혀
날로 조그맣게 멀어져 가고, 멀어져 가는 아버지를 따라
우리는 온몸에 날개를 달고
날개 끝에 무거운 이별을 달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환한 달빛 속
첫눈이 와서 하얗게 누워 있는 들판을 가로질러
내 마음의 한가운데
아직 누구도 날아 가지 않은 하늘을 가로질러
우리는 어느새
먹물 속을 날고 있었다.

“조심해라, 얘야”
앞에 가던 아버지가 먼저 발을 헛딛었다
발 헛딛은 자리,
서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