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 김종문

  내가 서양 문명의 혜택을 입었다면
  그것은 단 한 가지, 의자이다.
  그렇지만 나의 의자는
  바로크풍이나 로마네스크풍과는 거리가 멀고
  더우기 대감들이 즐기던 교의 따위도 아니다.
  나의 의자는 강원도산 박달나무로
  튼튼한 네 다리와 두터운 엉덩판과 가파른 등이
  나의 계산에 의해 손수 만들어졌고
  칠이라고는 나의 손때 뿐이다.
  나의 의자는
  나의 무게를 저울보다는 잘 알고 있고
  나의 동작 하나 하나에 대해 민감하며
  나의 거칠어지는 피부를 어루만질 줄 안다.
  나의 고독은 나의 의자와의 교감이기에 고독이 아니고
  나의 독백은 나의 의자와의 대화이기에 독백이 아니다.
  낮을 밤에 이어 시를 쓰노라면
  나의 의자에서 시가 우러나며
  나의 다리, 나의 엉덩판, 나의 등이 되어
  때로는 지하 8척 아래로, 때로는 구중의 탑 위로
  나를 운반하지만
  나의 의자는 항시 제자리에 있다.
  나의 의자는 세계의 축, 나의 만세반석이다.
  세상에는 빈 것이 하도 많지만
  나의 의자는
  비록 공석중이라도 비어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