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샘물에 - 구자운

  저물녘 흥청대는 이끼를 뜯으면서
  우리들은 샘물에 씻기는 해골일 걸세.
  소금인 양 흰 덩어리 이루어
  아늑한 깊은 수풀의 길표 옆에서.
  점백이 뱀이 움틀거린다.
  전엔 희망이었을 엷은 눈을 뜨고서
  반역의 바위를 물어뜯을 때,
  우리들은 꿈꾸느니, 어슬녘의 파선을,
  검은 절망의 물결 드높이
  벼락불의 축복을 가져오며,
  허무의 고요가 기슭으로 밀려닥침을
  그리고 갓난 아이의 울음이 어머니의 오장을 꿰뚫음을,
  캄캄한 어둠에서 아침이 태어남을,
  노여움이 아니고 배의 키바퀴도 아니고,
  영롱한 맑은 숨결로 엉긴
  소리들이 날개 이루어 파닥거려 옴을.

  우리들은 밤잠에 잠기는
  썩어 버린 관 속의 해골일 걸세.
  빗물인 양 내리는 나뭇잎의 입맞춤에 덮인,
  그리고 가끔씩 하품을 하며 있는 야심 없는 꽃,
  묻혀서 보이진 않지만 가장 뚜렷한
  작은 거울 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