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행시초 - 강우식

  (하나)

  내외여, 우리들의 방은 하나의 사과속 같다.
  아기의 손톱 끝에련듯 해맑은 햇볕속
  누가 그 순수한 외계의 안쪽에서
  은밀하게 짜올린 속살 속의 우리를 알리.

  (둘)

  순이의 혓바닥만한 잎새 하나
  먼 세상이나 내다보듯
  초록의 물구비를 넘어나
  짝진 머슴애의 얼굴을 파랗게 쳐다보네.

  (셋)

  화사한 잔치로 한 마을을
  온통 불길로 휩쓸 것 같은 노을이 타면
  그 옛날 순이가 자주 얼굴을 묻던
  내 왼쪽 가슴팍에 새삼 피어 오르는 쓰린 눈물이여.

  (넷)

  계집애들의 뱃때기라도 올라타듯
  달이 뜬다. 젖물같이 젖어 오는
  저 빛살들은 내 어머님의 사랑방 같은 데서
  얼마나 묵었다 시방 오는가.

  (다섯)

  낙엽은, 한 여자가 생리일에 꾸겨버린 색종이처럼
  나무가지 끝에 매달려 있다. 가을날
  무덤 속같이 생각이 깊어버린 여자 곁에서
  사랑이여, 우리가 할일이라곤 하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