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행길 - 강인한

  서울에서 정읍까지
  적막한 직선으로
  눈이 내린다.
  영하 오도의 슬픔으로 내린다.
  검은 고속도로 위에
  도로정비를 하는 늙은 인부들의
  오렌지빛 제복 위에
  삼륜차로 달달거리는 가난한 이삿짐 위에
  내린다.
  창밖을 바라보는
  나어린 작부의 취한 눈망울
  떠나온 방직공장 기숙사 지붕 위에
  손금처럼 말라붙은 만경강 줄기 위에
  갈가마귀 북풍 속을
  떼지어 날아가는 남행길
  반도의 하반신에
  어루만지듯이 눈이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