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류가 있는 골목 - 방종헌
ㅡ남산동ㆍ3 

1
내 마음의 빈 집을 그가 다녀갔다
오래 비워둔 벽채에다
추억처럼
한 줄 금, 실연의
구절을 남기고 다녀갔다
무엇을 추억하라는 것일까
아님 추억처럼 그리워하라는 걸까
빈 집이 된
집이 되지 못한 채
들끓는 명아주 풀대로 분주한
내 마음의 빈 집을 그가 다녀갔다

2
몇 번째인가
골목이 생겼다가 사라진다
담쟁이 넝쿨처럼 번져간 골목
전신주에 이름이라도 새겨두어야 할까
그러다 골목 전신주마다 이름이 새겨질 것 같다
다시 언덕, 골목에서 넝쿨손을 벋어 본다
너의 얼굴이 지워지기 전에
기억이 서로 어긋나기 전에
너의 집으로 나를 보내기 위해
골목을 돌면,

담벽에는 석류꽃들이 불타고 있었다

3
어제가 쌓인 골목은 어두웠다
석류꽃이 지고난 뒤
골목을 떠돌던 가난한 영혼이
꽃잎처럼, 비에 밟히고
내 발목을 부여잡았다 오래도록
지고 있는 붉은 햇살을 안고
옮겨가지 못한 시간들만이
우두커니가 되어
지는 햇살을 안고 쓸쓸해했다

시집 p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