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집 한 채 - 감태준

바다를 건너 간 친구한테 편지를 쓰다가
바다를 밀어 오는 쓸쓸함에
밀리고 밀리다가
마음 혼자
아는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는
밤 열한 시

나는 가네, 서울을 나간 사촌은
고향 근처에서 벽돌을 찍고 있을까
어둠 속은 깊어지고
이제 더 깊어질 것이고
구두쇠 박씨는
지금도 문패 대신 맹견주의표를 붙이고 있을까
처음 보는 집을 나화
2층 3층에서
골목을 내려다보고 있는 집을 나와
담장 안에 숨어 있는 집을 나와
주인 없이 문만 열린 집을 나화
좁은 골목에서 서로
어깨를 밀고 있는 집을 나와

어제도 갔던 집
염치는 없지만 안심하고 머무는 집
소주를 마시고
죽은 멸치 몇 마리를 고추장에 찍어 먹은 잘못 밖에 없는
시인의
홑옷 한 벌이 빨래줄에 널려 있는 집으로 들어간다

어둠 속은 깊어지고
이제 더 깊어질 것이고
시인 한잔 마음 한잔
신문지를 깔고 잠든 마른 멸치도 한잔
셋이서 구겨진 몸들을 펼쳐 놓고
자거라 자거라
멀리서 들려오는 아이 우는 소리를 재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