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그늘 - 백기만(白基萬)

  훌륭한 그이가 우리집을 찾아왔을 때
  이상하게도 두 뺨이 타오르고 가슴은 두근거렸어요.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없이 바느질만 하였어요.
  훌륭한 그이가 우리집을 떠날 때에도
  여전히 그저 바느질만 하였어요.
  하지만 어머니, 제가 무엇을 그이에게 선물하였는지 아십니까?

  나는 그이가 돌아간 뒤에 뜰 앞 은행나무 그늘에서
  달콤하고도 부드러운 노래를 불렀어요.
  우리 집 작은 고양이는 봄볕을 흠뻑 안고 나무가리 옆에 앉아
  눈을 반만 감고 내 노래소리를 듣고 있었어요.
  하지만 어머니, 내 노래가 무엇을 말하였는지 누가 아시리까?

  저녁이 되어 그리운 붉은 등불이 많은 꿈을 가지고 왔을 때
  어머니는 젖먹이를 잠재려 자장가를 부르며 아버지를 기다리시는데
  나는 어머니 방에 있는 조그만 내 책상에 고달픈 몸을 실리고 뜻도 없는 책을 보고 있었어요.
  하지만 어머니, 제가 무엇을 그 책에서 보고 있었는지 모르시리다.

  어머니, 나는 꿈에 그이를, 그이를 보았어요.
  흰 옷 입고 초록 띠가 드리운 성자 같은 그리운 그이를 보았어요.
  그 흰 옷과 초록 띠가 어떻게 내 마음을 흔들었는지 누가 아시리까?
  오늘도 은헹나무 그늘에는 가는 노래가 떠돕니다.
  고양이는 나무 가리 옆에서 어제같이 조을고요.
  하지만 그 노래는 늦은 봄 바람처럼 괴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