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의 이유 - 송욱

  살결이 아니라 털결이 흡사 눈송이와 같다. 스핏쓰란 이름처럼 주둥이가 뾰죽하다. 밖에서 돌아오면 채 앉을 사이도 없이 무릎 위로 기어오르다가 눈덩이처럼 온 몸이 돌돌돌 뭉쳐지며 떨어진다. 눈덩이처럼 아프지 않다!

  마치 첫사랑으로 껴안은 때같이 죽을 듯 되살아날 듯 한 시이에서 저리도록 기쁜 소리가 목청 속에서 사뭇 구구대다가 구르기만 하다가 트일 새 없이 온갖 몸짓으로 자지러진다!

  가려우면 날카로운 발톱에 침칠하고 긁는다. 침과 발톱, 이상하게 색다른 두 가지 무기를 갖추었다!
  아무리 귀한 손님이라도 낯을 가려 마구 짖는다. 아무리 다정한 사이라도 먹는 사이에는 얼씬 못하게 한다. 원수와 먹이를 보면 태고적처럼 법열에 들어 정신을 통일한다!

  잠들어도 종긋한 두 귀는 안테나 삼아 세워 둔다. 콧길 씀씀이 이루 이르지 않는 데가 없고 빈틈 없는 주의력이 레이더망과 같다.

  되도록 납작하게 엎드리어 대지와 일치한 몸매로써 두 발로 뼈다귀를 쥐고 깨무는 이빨! 구미가 당기면 명주 행주처럼 접시를 말끔히 훔쳐 놓는 혓바닥! 전쟁에 익숙하며 능히 평화를 즐길 줄 안다.

  오직 애무를 청할 때만 비로서 쫑긋한 귀를 재우고 손을 핥아 준다. 아아 경계라는 마지막 깃발을 내린 셈이다!

  이 때문일까. 너무나 아름다워 적막한 설경에는 흔히 사랑스런 강아지가 보이는 것은! 뛰노는 눈덩이가, 딩구는 눈덩이가 보이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