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목(果木) - 박성룡

과목에 과물(果物)들이 무르익어 있는 사태처럼
나를 경악케 하는 것은 없다.

뿌리는 박질 붉은 황토에
가지는 한낱 비바람들 속에 뻗어 출렁거렸으나

모든 것이 멸렬(滅裂)하는 가을을 가려 그는 홀로
황홀한 빛깔과 무게의 은총을 지니게 되는

과목에 과물들이 무르익어 있는 사태처럼
나를 경악케 하는 것은 없다.

--- 흔히 시를 읽고 저무는 한 해, 그 가을에도
나는 이 과목의 기적 앞에서 시력을 회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