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속 잠겨 있는 붉은 회화나무처럼

노태맹

바다 속 잠겨 있는 붉은 회화나무처럼
오랜 내 노래 아직 푸른 심연에 잠들어 있네.

산 속 엄나무 꼭대기 매달린 푸른 물고기처럼
오랜 내 기억 아직 검은 바람에 흔들리고 있네.

그대 복사꽃으로 피어 나를 부르지만
그대 구불구불한 빛으로 쏟아져 나를 깨우지만
나는 우리 사랑이 어디쯤 와서 어디까지 가야할지
아직 분간조차 할 수 없는 새벽의 컴컴함이니

흰 사슴이 초록 절벽 끝에서 울고 있네.
모든 사랑이 혀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울음을 사랑으로 더듬어 해독하는 것이 우리 일이고 보면
이 새벽의 막막함에도 귀 기울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지.

그대는 어디에나 있어 모든 길들이 지워진다 한들
그 어디쯤에선가 걸어온 우리의 길이 끝나고
그 끝에서 다시 누군가의 길이 시작되어야 하고 보면
제비꽃 한 송이도 당신의 사랑이라고 믿을 수밖에.

강이 아침 강 위로 포개어지네.
새떼들이 겹겹의 붉은 종소리를 하늘로 끌고 올라가네.
내가 당신을 기억하는 첫 순간
당신이 나를 노래하는 첫 순간.

그러므로 나의 그대여 오라, 오라.
바다 속에 잠겨 있는 붉은 회화나무처럼만이라도
산속 엄나무 꼭대기에 매달린 푸른 물고기처럼만이라도
내 그대 사랑으로 가리라.
내 그대 사랑으로 가리라.

—《현대시학》2011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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