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사랑 인생
폴 엘뤼아르 (1895-1952)

그대를 향해 갔고 끝없이 빛을 향해 갔으며
삶은 몸통을 갖게 되었고 희망은 돛을 올리고
잠은 꿈으로 넘쳐흐르고 밤은
새벽에 신뢰의 눈길을 약속하였으며
그대의 양팔의 빛살은 안개를 헤쳐 퍼져나갔으며
그대 입술은 최초의 장미 잎으로 젖어 있었고
황홀한 휴식은 피로를 몰아내고
나는 내 생애 최초의 날들처럼 사랑을 찬미 했네
(중략)
사람이란 서로의 말을 듣고
서로 이해하고 서로 사랑하도록 만들어졌으며
그 아이들은 자라서 아버지가 되는 법이고
불도 없고 집도 없는 아이들이라면
인간과 자연과 그들의 나라를 다시 건설하리니
모든 사람들의 나라
모든 시대의 나라를
(오생근 역)

번역된 외국 시인들의 시를 읽는 것은 마치 비타민 알약을 먹는 것과 같다. 그 시는 싱싱한 과일이나 채소를 먹을 때의 그 씹는 촉감과 냄새와 빛깔이 사라진 것, 좋은 거니까 먹어봐, 하고 쑥 내밀어진 과제물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가끔씩 엘뤼아르의 시는 내게 많은 영감을 준다. 그의 저항 정신을 감싼 초현실주의를, 고백하자면 나의 시는 많이 베꼈다.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라는 시는 엘뤼아르의 ‘자유’라는 시를 대 놓고 베낀 것이다.

오늘 엘뤼아르의 시를 옮긴 것은 조금은 따뜻해지고 싶고 위로받고 싶어졌기 때문일지 모른다. 신뢰의 눈길을 보내고, 사랑을 찬미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모든 사람들의 나라, 모든 시대의 나라’가 문득 그립다. 그러나 그러한 과거를 가진 적이 없으므로 문득 그립다는 말은 적절하지 않다. 우리는 그의 시 제목처럼 ‘이곳에 살기 위하여’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

<불을 피웠네/ 친구가 되기 위한 불/ 겨울밤을 지내기 위한 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한 불을>. 이 겨울도 모두가 따뜻했으면 좋겠다.

(매일신문. 노태맹 시인 2015.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