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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선생과 노태맹시인

노태맹 시인 - 1962년 경남 창녕 출생. 계명대 철학과, 영남대 의학과 졸업. 1990년 '문예중앙'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 유리에 가서 불탄다(세계사, 1990), 푸른 염소를 부르다(만인사, 2008), 시인과의 만남(facebook)
추천 수 : 87 / 0
조회 수 : 8141
2004.10.02 (11:32:23)
문의 마을에 가서

  고  은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닿은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길이 적막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닫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쪽으로 벋는구나
그러나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을 끼어서
먼 산이 너무 가깝구나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것을.
끝까지 사절하다가
죽음은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 본다.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문의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문상을 가는 길이다. 여러 곳의 벗들이 또한 문상을 하기 위해 문의 마을로 모여들었다. 한 죽음의 조상(弔喪)을 위한 문의로의 모임은 곧 죽음의 길로 모여드는 형상처럼 보인 것이다. '거기까지 닿은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는 것은 이를 형상화한 것이다.  여기서 '죽음은 죽음만큼 길이 적막하기를 바란다'는 화자의 언명은 개체로서의 죽음, 생명 지닌 것의 생명 잃음이 안타까움을 가져다 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누구나 겪게되는 보편성의 죽음으로 인정된다면 모두가 인생의 무상함과 적막함을 깨닫게 되고 그로 인해 하나의 죽음을 죽음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 속에서 우리 산 사람들은 산사람으로서의 공간으로 되돌아오게 됨이다. 따라서 죽음은 죽음만큼 길이 적막하기를 바란다는 언명은 우리로 하여금 죽음의 의미를 깨닫고 삶의 공간을 되돌아보라는 위로의 말이 되는 것이다.  조문(弔問)으로는 적절한 조문인 셈이다.

  또는 이렇게 해석할 수 도 있다. 죽음은 죽음만큼 길이 적막하기를 바란다는 마른(차갑고 메마른) 소리를 들으며, 나의 죽음도 또한 저와 같이 되리라는 적막을 느끼고 움츠려드는 의식, 죽음을 연상하는 길은 -죽음을 생각하는 이들의 마음을 차갑게 하고 적막하게 한다. 그로 인해 죽음의 길은 추운 쪽으로 벋어가는 것이다. -삶의 무상을 생각하고, 죽음이 가져다 주는 적막에 몸서리치는 광경이 엿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살아있는 생명은 다시 제각기의 삶의 공간(잠든 마을)로 돌아가 삶의 무상을 새롭게 인식하고, 그 인식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행위(재를 날리고)로써 잠든-잠든다는 것은 의식의 잠듦이다. 즉, 삶의 의미를 곧잘 잊어 버리고 있음을 잠든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마을에 삶의 재인식을 요구하는 것이다. '문득 팔짱을 끼어서'는 바로 산 사람의 죽음에 대한 관조이며, 바라봄이다. 그 바라봄에서 느낄 때 죽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는 존재, 즉 멀리만 느껴졌던 산(죽음의 공간)의 존재를  가까이 있음을 새삼 느끼고, 그 속에 불안과 적막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이 불안과 적막의 삶을 위로하는 눈, 그 눈은 죽음도 삶도 함께 싸안고 내림으로 인간으로 하여금 불안과 적막을 현실을 견디고 살아가게 하는 힘을 주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것을.
끝까지 사절하다가
죽음은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 본다.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문의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2연은 죽음이 주체가 되어 설정된 모습을 보인다.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것을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라는 구절에서 우리는 죽음이 관념화된 모습을 본다. 그리고 삶도 죽음도 동일한 축에 놓인 한 사람의 한살이를 보여준다.  즉, 사람의 일생을 살아있는 동안의 공간만을 설정한 것이 아니라 죽은 뒤의 과정도 삶의 한 과정-일생-에 포함시킨 불교적 생각을 살펴볼 수 있다. 따라서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라는 말 속에는 거대한 자연의 삶이 살아있는 동안의 공간이 끝난 죽음을 받고 있음을 본다. 새로운 공간으로의 이동을 화자는 문의에 가서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삶의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다.  여기서 우리는 '끝까지 사절하다가 죽음은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 본다. '는 구절에서 그런 인식의 한 부분을 본다. 끝까지 사절한다는 행위는 인간의 공간에서 볼 때는 연명하고자는 끈질긴 의식을 부여잡음이며, 죽음의 공간에서 본다면 점잖은 거절이므로, 죽은이에 대한 조문의 행위로는 절창인 셈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수용, 받아들임이 인기척 속에 드러나고 결국 삶의 공간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삶의 공간을 되돌아보게 하는 셈이 된다. 죽음이 바라봄이이지만 궁극은 사람이 되돌아봄의 다른 이름인 셈이다. '겨울 문의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에서 겨울 문의에서 그는 생사의 위대한 한 모습을 엿보게 된 것이다. 그 축복인 양 눈이 내려 삶과 죽음을 포용하는 절대 평등의 지혜를 , 그리고 불교에서 말하는 적연이멸(寂然而滅)의 참모습을 보게 된 감탄이 쏟아진 것이다.

  결국 1연에서 보여준 조문을 통한 삶의 되돌아봄이 여기서는 죽음의 되돌아봄이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되, 동일한 양상임을 엿볼 수 있다. 죽음을 초월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 유한성은 인간 스스로를 낮추게 하고 겸허하게 함으로 그 삶을 진실되게 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의 겸허함을 위로하는 눈이 내리고, 죽음은 인간의 도전 또는 노력으로 도달할 수 없는 절대적 공간에 실재하고 있으며, 인간들이 어떤 관념을 부여하더라도 그 본질은 변함이 없다. 이것이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돌을 던지는 행위는 쫓아내는 행위-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나타난 행위로 해석하는 경우를 더러 볼 수 있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  이미 관점이 죽음을 바탕으로 삶의 공간을 돌아보고 인간으로 하여금 겸허하게 만들고 눈으로 그 겸허함을 위로한다면 돌을 던지는 행위는 부정의 행위와는 거리가 멀게 된다. -는 인간이 죽음의 두려움이나 죽음의 적막을 극복하고자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고 싶다. 실체를 파악할 수 없음이 죽음이되, 인간은 그 죽음의 실체를 해석하고 이해함으로 두려움을 없애고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 욕구가 돌을 던지는 행위는 아닐까 하는 것이다. 지극히 인간적 행위의 하나이다. 그러나 조금만 달리 본다면, 죽음과 삶은 하나인데, 우리가 돌을 던지는 행위란 더 많은 허무의 한 양상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죽음과 삶을 둘이 아닌 것으로 보는 불교적 사고에서는 돌을 던지는 행위가 어떻게 보일까? 절대 평등의 지혜에서 본다면 안타까운 중생의 몸짓인 것이다.

이 위대한 자연의 섭리 속에, 인생의 본질을 이루는 삶과 죽음. 그 삶과 죽음이라는 것은  결국 동전의 앞면과 뒷면이 아닌가. 이 사실을 화자는 지금까지 관념 속에서 불교적 사고관 속에 피상적으로 주어져 있다가 겨울 문의 마을에 가서 그 실체를 체득하게 됨으로 삶이 얼마나 소중하며, 또한 얼마나 겸허한 삶이 인생에서 소중한 것인가를 보게 된 것이다. 이 시는 결국 죽음과 삶은 둘이 아닌 하나라는 불이(不二)의 법문, 색즉시공(色卽是空)이요 공불이색(空不異色)이라는 불교의 공사상까지 우리로 하여금 엿보게 해준다.

(이해하기 힘든 시들을 골라 주면 이런 식의 개인적 견해를 겯들여 이야기해 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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