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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선생과 노태맹시인

노태맹 시인 - 1962년 경남 창녕 출생. 계명대 철학과, 영남대 의학과 졸업. 1990년 '문예중앙'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 유리에 가서 불탄다(세계사, 1990), 푸른 염소를 부르다(만인사, 2008), 시인과의 만남(facebook)
추천 수 : 106 / 0
조회 수 : 11561
2004.10.02 (12:54:42)
왕십리(往十里)
                                              김소월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여드레 스무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루 삭망(朔望)이면 간다고 했지.
가도 가도 왕십리(往十里) 비가 오네.

웬걸, 저 새야
울려거든
왕십리 건너가서 울어나 다고,
비 맞아 나른해서 벌새가 운다.

천안(天安)에 삼거리 실버들도
촉촉히 젖어서 늘어졌다데.
비가 와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구름도 산마루에 걸려서 운다.

'비가 온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다. 그 내리는 비를 창 열고 우두커니 앉아 무연코 바라본다. 하염없이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보는 마음도 절로 빗살에 젖어드는 듯하여 한탄이 절로 나온다. 게다가 나는 빗속을 뚫고 무언가를 분명히 해야 할 일 또는 분명하지 않고 그저 내리는 비를 바라보면, 덧없이 비는 '오누나'이다. 어딘가를 찾아갈 일도 찾아올 이도 없는 이 나절, 젖어드는 마음처럼 한 닷새나 왔으면 좋겠다. 이 닷새는 그저 마음의 허허로움을 메우기에 적절한 시간이면 다시 말할 필요도 없다. 아니 닷새면 어떻고 열흘이면 또 어떠랴? 지금 나에겐 그저 알 수 없는 허전함에 빗살이나 바라고 있는 것을.

그러고 보니 이놈의 비는 절기를 꼽아 헤아려 보니- 참 할 일도 없지- 대체로 '여드레 스무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루 삭망(朔望)이면 간다고 했'겠다. 책력을 놓고 살펴보는 세월 속에는 왕십리가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놈의 비는 끝도 없이 내려 내 마음을 어디로 끌고가는 지 웬 걸 가도 가도 왕십리에는 비만이 내리는구나.

잎새에 듣는 빗살 속으로 새소리가 스며든다. 그놈의 새소리도 비에 젖어들었는지 목소리가 흥건하게 젖어 있다. 저놈의 새 신세도 처량하기는 나와 흡사하지 않겠나. 허지만 내가 이리 궁상스럽게 비를 바라보며 책력이나 뒤지며 초하루 삭망에 간다고 하는 넋두리나 하고 있는 것을 새삼스레 새가 놀려대는 것처럼 여겨져 편한 마음은 아니다. 그러니 저놈의 새는 울려거든 왕십리 건너가서나 울지. 왜 하필이면 끝도 모를 허무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내 서글픈 심회를 아는 듯이 울어대누. 하긴 제도 깃털이 다 젖었으니 왕십리 건너에까지 갈 수나 있으랴? 불쌍하고 허전한 심사가 어찌 그리 닮았노. 허긴 오늘 같이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이라면 아마 천안 삼거리의 실버들도 꽤나 젖어 늘어졌겠구나. 그러고 보니 이 봄비가 새로운 희망이라든가 새 생명을 가져옴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 새 희망이라든가 새 생명의 희열을 노래하기엔 나도 잃어버린 것이 너무도 많아 차라리 마음의 시름을 씻어내릴 비라도 한 닷새 왔으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 구름이 산마루에 걸려 넘어가지 말고 이 왕십리, 내 슬픔의 공간. 비라도 와서 씻어낸다면, 가도 가도 왕십리. 끝도 없을 것 같은 내 슬픔의 그늘 언제나 가실려나.

이런 긴 넋두리를 해설이라고 붙여 보았다. 과연 해설이 될까? 이 시 속의 화자는 지금 나의 이 넋두리를 용납할 수 있을까? 이별 뒤의 허전함이든, 삶의 누적된 괴로움이든, 어떻게든 씻어내고픈 심정이 이 왕십리라는 작품을 적은 것은 아닐까? 그 많은 소월 시의 해설서에서 이 작품에 대한 해설은 드물었다.  

홍정선(평론가)의 평입니다. 겸으로 보세요.

김소월의 <왕십리>는 아마 지금의 서울에 있는 '왕십리'라는 지명에서 시의 제목을 취했을 것입니다. 김소월이 정주에서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유학을 위해 다시 배재고보에 다닐 때 혹시 '왕십리' 근처에서 산 적이 있는지 없는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어쨌건 '왕십리'는 이씨조선의 도읍지를 결정하는 무학대사의 설화가 어린 지명으로서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지명입니다.

'왕십리(往十里)'라는 지명의 한자 뜻은 "십리를 더 가라"는 의미입니다. 무학대사가 이성계의 명을 받아 도읍지를 찾아다니다가 왕십리에 이르러 이곳이 궁궐을 지을 장소라고 생각하고 공사를 시작했는데 땅 속에서 '왕십리'라는 글자가 새겨진 비석이 나왔다는 설화가 있습니다. 그래서 십리를 더 가서 현재의 경복궁 자리를 도읍으로 정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김소월의 '왕십리'를 이해하는 데 이같은 설화를 반드시 알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설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왕십리'라는 말이 '십리를 더 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상식으로 알 수 있어야 이 작품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우리는"가도 가도 往十里 비가 오네."라는 말에 담긴 복합적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가도 가도 계속 십리를 더가라는 상황, 가도 가도 비가 오는 '왕십리'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럼 이제 구체적으로 작품을 분석하며 이야기를 진행하겠습니다. 저는 사실 <왕십리>란 작품에서 첫째 연을 대단히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근대시에서 이 시의 첫째 연과 같은 빼어난 리듬감을 획득하고 있는 시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김소월이 1920년대 초에 성취한 이런 리듬감에서 우리 근대시는 앞으로 나아가기보다는 뒤로 물러선 시가 오히려 더 많다는 점에서 저는 이 작품의 첫째 연을 높이 평가합니다.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여기에서 보듯 '온다' → '오누나' → '오는' → '올지라도'로 이어지는 리드미컬한 흐름은 자연스러우면서도 빼어나고 평이하면서도 신선합니다. 그리고 '오다'라는 동사의 활용형이 반복되면서 4개의 행을 이어가는 리듬감도 리듬감이지만 동시에 그 리듬감이 만드는 의미도 볼만합니다. 현재형의 '온다'라는 말이 가진 사실진술의 의미는 '오누나'에 이르면 비가 온다는 사실에 대한 어떤 심리적 반응을 내포하기 시작합니다. 비가 오는 일은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에 방관적이 될 수밖에 없긴 합니다만  '오누나'라는 말에는 방관적이면서도 지겹다는 의미가 내포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화자의 태도는 '올지라도'에 이르면 '한 닷새'만 오고 그만 그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분명히 드러내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연에서 화자는 이같은 태도를 더욱 선명히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여드레 스무날엔 온다고 하고/초하루 삭망이면 간다고"한 비가 왜 이리도 계속되느냐? "천안에 삼거리 실버들도/촉촉히 젖어서 늘어졌다네."에서 알 수 있듯이 자연의 모든 생명체들에게는 이미 충분할 정도로 비가 왔는데 왜 그치지 않고 계속 내리느냐는 모습을 우리 앞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같은 태도와 심리가 이 시의 가장 핵심적인 구절인 "가도 가도 往十里 비가 오네."라는 상징적인 말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왕십리>라는 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앞에서 말한 이유도 이유이지만 "가도 가도 往十里 비가 오네."라는 구절이 지닌 폭넓은 상징성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살다보면 즐거울 때도 많지만 괴로울 때도 많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여러 차례 겪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일 앞에서 주저앉아 버리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김소월의 <왕십리>를 기억할 수 있다면 커다란 위안이 될 것입니다. <왕십리>의     "가도 가도 往十里 비가 오네."라는 구절을 읊조릴 수 있다면 우리가 처해 있는 '왕십리'의  상황이 조금은 더 견딜만해 질 것입니다.  이를테면 진도가 나가지 않는 사랑, 반응이 없는 짝사랑의 괴로움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청마 유치환의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란 구절을 떠올리며 탄식하는 것도 인간적인 모습이지만 김소월의 "가도 가도 往十里 비가 오네"라는 구절를 읊조리며 신음해 보는 것도 그럴듯하게 인문주의자적인 모습입니다.  그래서인지 <왕십리>의 화자는 드디어 이렇게 말합니다.  

웬걸, 저 새야
울랴거든
왕십리 건너가서 울어나다고,
비 맞아 나른해서 벌새가 운다.

이같은 말은 객관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아마도 자신의 상태가 견디기 힘들어서 일 것입니다.  새의 울음소리마저  자신의 감정을 증폭시킨다는 생각 때문일 것입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처량하고 답답한 상황 속에 갇혀 있는데 너마저 그렇게 울어대면 내가 어떻게 견디느냐는 심리가 여기에는 작용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같은 설명은 어디까지나 표면에 드러난 객관적 모습에 대한 설명이고 이것을 좀 더 문학적인 방식으로 설명한다면 사실은 위의 구절은 비 맞아 우는 벌새가 바로 자신의 모습이라는 데에서 오는 비유적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벌새'와 같은 아주 작은 새,  비가 오는 일과 같은 자연의 움직임에 도저히 저항 할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자신이며, 그 자신이 사실은 내면적으로 울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할 것입니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향해서 "지금은 울어서는 안된다. 왕십리를 건너가서 울어야 한다.  십리를 더 가라는 상황이 끝나고 목적지에 이르렀을 때, '왕십리'가 아닌 곳에 도달했을 때 그 때에 울어야 한다"는 다짐을 하고 있는 것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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