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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선생과 노태맹시인

노태맹 시인 - 1962년 경남 창녕 출생. 계명대 철학과, 영남대 의학과 졸업. 1990년 '문예중앙'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 유리에 가서 불탄다(세계사, 1990), 푸른 염소를 부르다(만인사, 2008), 시인과의 만남(facebook)
추천 수 : 68 / 0
조회 수 : 7709
2004.10.20 (08:26:43)
울음이 타는 가을강
                   박재삼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 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강을 보겄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와가는,
소리죽은 가을강을 처음 보겄네.
{사상계}, 1959.2, 제1시집 [춘향이 마음](1970)



우선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이란 제목을 살려 생각합시다. 강이 타오를 리는 없고, 본문에 '가을 햇볕으로나'나 '해질녘'이 나오니, 아마 저녁놀이 강물에 비치어 붉게 물든 모습, 일렁이는 물살이 불길로 타는 듯한, 그런 느낌의 표현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럼 왜 저녁놀이 타는 가을 강이라 하지 않고,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이라 하였을까요?
하나씩 짚어나가면서 해결해 봅시다.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과 친구의 서러운 사랑이야기가 동무 삼을 수 있다면 동질성의 요소가 있겠지요. 사랑 이야기가 서러운 것은 사랑이 지속되지 못한 탓일 것이고,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이란 제각기 사랑의 상실에서 나오는 허전함으로 함께 있어도 함께 있는 마음이 아닌 상태, 결국 제 마음 드러내어 풀어낼 수 없는 애틋함과 슬픔이 있고, 연민이 있는 것이겠지요. 이에서 동질감을 형성한 것이겠지요.
  방안에 있어도 답답하고 마음이 편하지 않을 때, 자연은 위로의 공간이 됩니다. 들길을 나서고, 한없이 투명하고 밝은 빛을 따뜻하게 내려 쬐는 가을 볕 속에서 무연히 제 마음이 풀려나고, 사랑을 잃은 슬픔도 한결 가벼워져 마음을 열게 됩니다. 더구나 따뜻한 가을볕은 얼마나 다정하고 밝고 정갈한 느낌을 주는가요. 갈대숲 길이면 더욱 좋을 것이고요. 낮은 다북솔이 어우러진 갈밭, 그사이로 걸으면서 멀리 타는 듯 붉게 일렁이는 가을 강을 바라보면 절로 그 물결 속으로 스며들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니 '어느새'가 되고 가파른, 적당히 한숨도 몰래 섞어낼 수 있는 '등성이', 이쯤에서 등성이란 되돌아 보기 좋은 장소이겠지요. 떠나보낸 사랑을 되돌아 보면 절로 눈물나는 것이지요.

아, 햇살 아래로 햇살 아래로 희미하게 지워지는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나도 한 때 한 여인을 사랑하였습니다. 지금은 모르지요. 알아도 밝힐 수도 없지요. (김광규의 시는 도회적이지요. 그래서 감각적, 지적이고, 그래도 읊조리면, 사랑의 추억이 되살아납니다.)

또한 경문왕의 당나귀 귀를 본 복두장이가 대나무 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속삭이듯, 혼자만 영원히 간직하고픈 슬픈 사랑의 이야기. 그 사랑 이야기를 풀어내게 되는 것도 자연이 주는 위안의 힘이라 볼 수 있지요. 그 자연의 위안 안에서 마음껏 울고픈 때, 강 위로 노을이 지는 것을 본다면 자연과 하나로 통합되는 자신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자연의 위안 속에 마음의 누그러움을 느끼게 하는 공간이 된 셈이지요. 그때 자신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볼 수 있지요. 이 눈물과 강물이 함께 노을 속으로 저물어 가는 사랑을 보는 것입니다. 눈앞에 펼쳐진 자연은 그냥 자연이 아니라 인생의 고뇌와 슬픔이 어우러진 자연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험 없는가요. 연암 박지원이 열하일기 속에서 요동의 너른 벌을 보는 순간, '아, 울기에 참 좋은 곳이구나!'라고 감탄사를 발하는 글이 있어요.(박지원의 열하일기 중, 호곡장론) 한번 읽어 보세요. 사람은 그저 슬픔으로만 우는 것이 아니지요. 이 정도만 느낌이 왔다면 이제 이 시는 취한 느낌으로도 충분한 감상이 됩니다.

이쯤에서 2 연으로 옮아 갈까요.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강을 보겄네

제삿날 큰집에 제사를 모시기 위해 모이는 사람들이 밝혀논 불길은 따뜻함과 인정의 소담스러움을 볼 수 있지요. 남은 사람들끼리 모여 죽은 이를 추모하는 행위는 쓸쓸함이면서도 다정함이며, 인정스러움의 불빛이지요. 그 불빛도 아슬한 그리움으로 아름답고 마음을 설레게 하지만, 해질녘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은 더할 나위없는 위로의 불빛을 화자에게 던져주고 있는 것이지요. 등성이에 이르러 저절로 넘쳐나는 눈물을 그 가을 강은 제 눈물인 양 함께 울어주는 느낌이었을지도 모르지요. 내 눈에 고인 눈물인지 강물인지 구분이 되지 않으면서도 함께 하는 저 가을 강이 있다는 사실. 그 놀라움의 순간, 삶은 씁쓸하고 허전한 데서 따뜻하고 밝은 곳으로 옮아 옵니다. 그때 쯤, 강물은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더 깊은 흐름으로 사랑을 감싸는 모습을 지녔으며, 외로움에 울 줄도 알면서 동시에,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마는 강물이 되는 것입니다. 자연과 인간의 삶이 어쩌면 저렇게 하나로 어우러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닙니까? 그야말로 황홀한 발견이지요.
  삶의 과정이 곡절 많은 강물의 구비처럼 흐르고, 때론 산골 물소리처럼 맑고 깨끗함을 내비치며, 머언 바다에 닿을 듯한 설레임으로 흐를 때, 그것은 바로 첫사랑의 울림이지요. 그러나 알고 보면 사랑은 갈등과 번민의 과정이지요. 그래서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들게 마련이지요.
샘?, 그런데 왜 미칠 일 하나로 라는 말이 나와요. 이 가라 앉아가는 삶의 세계를 바라보며 바다에 다 와가는 슬픔의 존재가 도달할 궁극을 본 느낌인데 '미칠 일 하나로'라는 말은 이해가 안 가요. 짜슥 급하기는? 기둘리라. 흐름의 자취마저 잊어버리고 바다에 다다른 강물, 제각각의 감정에 휩싸인 강물을 안아주는 그 너그럽고도 허전한 마음,그것이 바다가 지닌 내면이겠지. 여운을 즐길 줄 알아야제. 우짜 이리 성질머리가 급하노? 문디야. 다음으로,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와가는,
  소리죽은 가을강을 처음 보겄네.

이기 먼 소리고 하믄? 뭐 그런기 있니라. 애들이 알 수 있냐? 이카믄 셈(덧셈의 셈)으로 전락하는기라.
다시 매무새 갖추고, 내용에 몰입해 보자. 사랑 끝에 생긴 울음에서 다시 시작해 보자. 첫사랑의 좌절 다음에 사랑 끝에 생긴 울음이란 사랑의 감정에서 자유롭지 못한 거지. 즉 섬세하고 여린 감성, 슬픔, 격정, 아픔 등이 스민 것이지. 그런데 강물에는 이 사랑의 울음까지 녹아나는 거야. 스며들어 하나가 된 거지. 게다가 미칠 일은 무엇이겠냐? 삶에서 그 사랑을 수용하고 받아들이지 못한 안타까움, 후회로움에 휩싸여 바다란 공간으로 스며드는 것이 아니겠냐?
자 이렇게 보면, 자연 현상으로 가을 볕과 가을 강을 두고 거기에 녹아든 인간 삶의 애틋함을 느끼게 하지요. 그렇다면 바다는 무엇일까요. 곡절 많은 사랑의 여울을,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말없이 다독여 바다로 만드는, 무언가 사라지는 느낌이 들면서도 모든 강물의 응석과 호소를 묵묵히 받아들여 등을 두드리는 장엄의 존재같은 느낌은 들지 않는가요. 그 속에 녹아드는 인간 삶도 결국은 저 바다로 가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게 본다면, 바다는 모든 것이 돌아가야 할 본향, 궁극적 삶의 공간 같은 그런 느낌이 들지요. 즉 바다는 무한 침잠의 세계이지요. 그 바다 앞에 선 고요와 무력한 인간의 모습을 소리 죽은 가을강으로 보게 된 거지요. 위대한 자연의 너그러움 속에 울음으로 자신을 드러낸 인간의 그 작은 모습. 삶의 궁극을 얼핏 발견하고 침묵하는 모습이 소리죽은 강 속에 흐르는 것이지요.
하고 싶은 말은 이쯤에서 그치고, 남은 일은 마음에 새겨두고 가을 갈대나 억새가 어우러진 강변으로 나가 나직히 읊조리는 일입니다.
덤 하나, 이 시에 나타난 산골 물소리에서 강물이나 바다에 이르기까지 물이 지닌 의미를 생각해 보시길. 덤 둘 가을, 저녘의 시간적 배경 속에 찾을 수 있는 의미, 덤 셋, 불빛, 가을 햇볕도 함께.

바다 : 무한히 창조적인 생성력과 모성성으로 인하여 여성 또는 미지의 세계를 상징하기도 하고 광활함과 적막함을 표출하는 공간적 배경이 되기도 한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며 이승과 저승이 하나가 되는 신화적 상상의 공간으로 상징된다. 거대하고 역동적이며 생명력이 넘치는 물이다. 파도의 출렁거림으로 바다는 가변성과 생기 넘침, 싱싱한 생산력과 활동력으로 이미지화 되는 경우가 많다. 바다 앞에서 인간은 자신이 지닌 존재적 왜소함과 본질적인 물음, 심연의 고독과 마주하게 된다. 삶의 의지와 인고를 배우는 깨달음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김남조, 겨울바다>
가을 : 수확의 계절로 결실, 충만, 보람 등의 상징성을 지닌다. 여름날의 무성했던 만물이 쇠락해가는 계절이기에 소멸, 이별, 상실, 가난, 외로움, 쓸쓸함 등의 음울한 이미지로 상징되기도 한다. 음울한 이미지는 인생의 무상성을 깨닫게 하는 동기가 되어 영혼의 정화와 함께 정갈하고 맑은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마지막 과실을 익게 하시고.........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후도 오래 고독하게 살아 -릴케, 가을 날>
강 : 물의 속성인 창조의 신비, 죽음과 재생, 정화와 구원, 비옥과 성장, 무의식 등의 원형적 상징성을 지닌다. 강물의 흐름은 시간의 흐름 또는 인생에 비유되어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변화와 지속의 표상이 된다. 고요한 강물은 거울의 역할을 하여 마음의 고요함을 드러낸다. 이편과 저편이라는 경계의 의미가 있어 이승과 저승, 사랑과 이별, 만남과 떠남, 자아와 세계 등의 단절이나 거리감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뭐락카노, 저 편 강기슭에서/ 니 음성은 바람에 불려서 -박목월, 이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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