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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선생과 노태맹시인

노태맹 시인 - 1962년 경남 창녕 출생. 계명대 철학과, 영남대 의학과 졸업. 1990년 '문예중앙'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 유리에 가서 불탄다(세계사, 1990), 푸른 염소를 부르다(만인사, 2008), 시인과의 만남(facebook)
추천 수 : 73 / 0
조회 수 : 7675
2004.10.21 (14:28:30)

꽃을 위한 서시
- 김춘수

나는 시방 위험(危險)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未知)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無名)의 어둠에
추억(追憶)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 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塔)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금(金)이 될 것이다.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新婦)여.
({문학예술}, 1957.7)

     오렌지
                - 신동집

오렌지에 아무도 손을 댈 순 없다.
오렌지는 여기 있는 이대로의 오렌지다.
더도 덜도 할 수 없는 오렌지다.
내가 보는 오렌지가 나를 보고 있다.

마음만 낸다면 나는
오렌지의 포들한 껍질을 벗길 수도 있다.
마땅히 그런 오렌지
만이 문제가 된다.

마음만 낸다면 나는
오렌지의 찹잘한 속살을 깔 수도 있다.
마땅히 그런 오렌지
만이 문제가 된다.

그러나 오렌지에 아무도 손을 댈 순 없다.
대는 순간
오렌지는 이미 오렌지가 아니고 만다.
내가 보는 오렌지가 나를 보고 있다.

나는 지금 위험한 상태에 있다.
오렌지도 마찬가지 위험한 상태에 있다.
시간이 똘똘
배암의 또아리를 틀고 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오렌지의 포들한 거죽엔
한없이 어진 그림자가 비치고 있다.
오 누구인지 잘은 아직 몰라도.
(시집 {누가 묻거든}, 1989)



1. 비교하여 읽어 보기

①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는 지금 위험한 상태에 있다

② 나의 손이 닿으면 미지의 어둠이 되고 만다.
   오렌지도 마찬가지로 위험한 상태에 있다.

③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오렌지에 아무도 손을 댈 순 없다. 대는 순간 오렌지는 이미 오렌지가 아니고 만다.

④무명(無名)의 어둠에 추억(追憶)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내 운다.
시간이 똘똘 배암의 또아리를 틀고 있다

⑤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여
누구인지 잘은 몰라도 한없이 어진 그림자가 비치고 있다.

이런 정도의 상황과 유사성을 대비하였다면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입니다. 자 그렇다면 살펴봅시다. '오렌지'와 '꽃'은 내가 알고 싶어하고, 그 실체를 속속들이 파헤쳐 보고픈 대상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어느 대상에도 손을 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손을 대면, 하나는 '미지의 어둠'으로, 하나는 '오렌지가 아니게' 되어 버립니다. 알고는 싶으나 손댈 수 없는 나의 처지, 안타깝지요. 알고픈 열망은 '무명의 어둠에 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한밤내 울어'도 보지만, 그리고 (존재의 실체를 알기 위한 사색의) '시간이 똘똘 배암의 또아리를 틀고' 앉아 있어 보지만, 결코 닿을 수 없는 거리감을 지닌 대상이라 더욱 안타깝지요. 그러나 그러한 노력 자체는 무의미 한 것이 아닙니다. 그 노력이 지닌 가치는 '금'이 되기도 한다.
꽃과 오렌지는 나름대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아름답고 소중한 가치의 존재인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얼굴을 가렸기에 비록 그 윤곽을 뚜렷이는 알 수 없어도 그래도 소중한 존재가 됩니다. 오렌지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없이 어진 그림자가 비치는' 존재. 역시 그림자라 하여 그 실체를 뚜렷이 알 수 없다는 고백입니다만, '어진'이란 말 속에 대상에 대한 긍정과 신뢰의 가치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즉, 존재의 본질을 알고자는 간절한 마음을 꽃과 오렌지란 대상으로 구체화시켜 표현한 작품입니다.  

2. 생각해 보기
우리는 감각기관을 통하여 받아들인 사물들의 인상을 통해 그 사물을 지각하고자 하고, 개념화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결과를 언어로 드러냅니다. 그러나 사실 감각기관은 불완전하기 짝이 없지요.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머리카락이 하나 빠져도 빠졌기 때문에 동일한 외형은 아니지요. 표정도 감정의 상태에 따라 달라지니 잠시 전의 나와 지금의 나도 무엇으로 동일한 존재로 인정할 수 있을까요. 그 때 우리가 내세우는 것은 개념입니다. 내재된 본질이나 속성으로 대상의 동일성을 유지하고 그 존재의 실체를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 개념들은 언어로 형성되어져 기억의 공간 속에 저장되어 있다가 사물이나 대상을 대할 때, 그 속성을 의식으로 가져와 이해하려 합니다. 하지만 언어- 말이란 연속적인 세계를 불연속적으로 드러내는 한계가 있고, 언어 속에 내재된 개념으로 인해 그 실체를 왜곡하고 맙니다. 김춘수 님의 꽃에서 이 사실이 잘 드러납니다. 자신의 향기와 빛깔에 알맞은 이름을 얻기란 얼마나 어려운가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랑한다'란 말이 상황의 변화에 따라 얼마나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가를 잠시 생각해 보면 이 사실을 더욱 잘 알 수 있습니다. -도 또한 불완전합니다. 오렌지나 꽃이 아니라 사람,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관계가 없습니다. 누구든 어떤 대상이든 몇 마디의 말(언어)로 규정하는 순간 그 대상은 왜곡되고, 본질이 훼손됩니다.
  그리고 사실 우리가 인식하는 대상이 동일하게 지속될 것이라는 기대의 결과이지, 실제는 아닐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사실 꽃의 실체, 그 존재의 본질을 규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많은 철학자들은 언어의 한계 속에서 이 존재의 본질을 알고자는 혈투를 벌여 지금의 철학이라는 학문을 이뤄놓았지만, 시원한 대답은 없습니다. 이 불명료한 대상, 즉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에 있는 것이 꽃이고, 그 꽃은 손대는 순간 의미나 실체의 소멸로 어둠이 되고 맙니다. 오렌지에 손을 대서 껍질을 벗기거나, 속살을 까거나 간에 손대는 순간 이미 조금 전의 그 오렌지는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존재의 실체를 모를 때, 답답한 것이 당연하고 알고픈 욕구가 일어남은 당연합니다. 두 시인은 바로 그 점에 착안한 것이지요. 동시에 누구도 규명할 수 없는 존재의 실체, 그러나 그 존재의 실체를 규명하고자 사색의 시간을 갖거나, 한 접시의 불을 밝히는 행위는 가치 있는 일입니다.
왜 사느냐는 물음에 누구든 선뜻 이렇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숭산 스님의 제자 중 푸른 눈을 가진, 현각 스님이 있습니다. 하버드대학원에서 종교철학을 공부하여 깊이 있는 학문의 성취를 가졌다고 자부했으나, 숭산 스님의 한 마디 말에 자신의 모든 지식이 물거품이 되는 것을 보았다 합니다. 그 한 마디 말이 바로 유명한 공안인 '이뭐꼬'입니다. 즉 너는 누구냐라는 한 마디에서 자신이 누구인가가 사라진 것입니다. 그러니 머리 깎고 용맹정진할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겠지요.
우리가 그 대상의 본질을 모르고, 대답할 수 없다고 하여 대상이 없고, 답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 실체를 증명할 수 없다고 그 실체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요.
따라서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 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塔)을 흔들다가 / 돌에까지 스미면 금(金)이 될 것이다.'는 의미 있는 행위이며,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렌지의 화자도 이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글을 맺고 있지요. '다음 순간,/오렌지의 포들한 거죽엔/한없이 어진 그림자가 비치고 있다./오 누구인지 잘은 아직 몰라도.'라고.
두서없는 설명이 혼란을 가중시킨 느낌이 많습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두 시를 따로 설명하려면 너무 복잡한 인식의 과정이 필요하기에 편법으로 두 작품을 비교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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