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앞에서

느리고 느린 범종소리가 고요의 숲을 물들이는 가을이 왔습니다.
산승은 찾아드는 이도 없는 외줄기 길을 따라 범어 한 자락을 풀어놓습니다.
소리 한 자락이 밝혀놓은 불빛 따라 어둠도 함께 어슬렁거리며 비를 뿌렸습니다.
제 푸르른 빛깔을 잃어버린 사마귀 한 마리가 길섶에서 나와 흙이 되고 있었습니다.
사랑으로 바라보면 길이 아닌 곳이 없다면서 떡갈나무도 두엇 추녀 끝 풍경으로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멀리 떠나있던 사랑이 타박거리는 발걸음으로 돌아오는 가을이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