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 잎
신 대철(1945- )

낮은 산도 깊어진다
비안개에 젖어 무수히 피어나는 속잎,
연하디 연한 저 빛깔 사이에 섞이려면 
인간의 말의 인간을 버리고
지난 겨울 인간이 무엇을 받아들이지 않아야 했을까?
(『무인도를 위하여』문학과 지성사. 1977)

처음 신대철의 시집『무인도를 위하여』를 읽었을 때의 그 서늘하고 고요한 느낌을 아직도 기억한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선물한 몇 안 되는 시집이었다. 시집이 나온 지 벌써 40년 가까이 지났고 이제는 문학사 속으로 들어갔다고 봐도 될 터이다. 문학사 속으로 들어갔다고 좋은 현대시가 좋지 않은 현재시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가끔 세월이 지난, 한때 우리가 열광했던 시들을 보면서 우리는 그 시간의 공백과 변화를 분명하게 느끼게 된다. 가령 서정주의 시를 보면서 나는 가끔 그 허술함과 과장 같은 것을 읽는다. 이것은 당대의 시 독해가 잘못되었다 기 보다는 그 시대와 현재 사이에 있는 많은 시인들이 그의 시로부터 많은 자양분을 흡수해 갔기 때문일 것이다.

신대철의 이 시와 이 시의 이미지 패턴은 지금 보면 많이 익숙하다. 그 어떤 궁극 혹은 궁극의 사물에 도달하기 위하여 우리의 얼마나 많은 비-인간적 순수를 받아들여야 하는가? 지금도 많은 시인들이 이러한 패턴을 시의 본령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시 읽는 이 시가 낡아 보이는 더 큰 이유는 주체 중심적 태도 때문이다. 인간과 인간의 말을 버린 그가 다시 무엇인가를 받아들이려 하고 연한 연두 빛에 섞이려 하지만 그것을 수행하는 주체는 다시 나라는 인간이다.

그럼에도 이 시가 아름다운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삶은 더럽혀져 있고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모두 연한 빛 어디로 망명하고 싶은 것이다. 

(매일신문. 노태맹 시인 2015/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