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악(雅樂) -중광지곡(重光之曲)-
송 욱(1925-1980)
 
슬프다 하면
너무 무겁고
무겁다 하면
너무 깊으다
하늘인가 바단가
흘러 가는 가락인가
살별 떼가 나는
밤을 다한 마음인가
넓어질수록
아아 흥청대는 공간이여!
가라앉아도
아아 싱싱한 시간이여!
불꽃을 퉁기면서
휩싸고 돈다
(『나무는 즐겁다』. 민음사. 1978)

궁중 음악으로서의 아악이 아니라 아름다운 음악으로서의 아악. 중광지곡은 국악의 영산회상 즉 석가여래가 설법하던 영산회의 불보살들을 노래한 악곡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은 시를 읽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인은 어떤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그 음악에 감응한 자신의 내면을 그려냈다. 그 그림은 마치 내 컴퓨터의 바탕 화면에 깔려있는 우주 속 오리온 성좌의 놀랍고 신비로운 그림과 닮아있다.

사실 이 시는 내 문학의 스승인 문학평론가 김현 선생이 삼킨 시다. 그는 이 시의 해설 말미에 “아름답다! 그 말밖에 할 말이 없다.”고 썼다. 그의 느낌의 골을 따라서 송욱의 시가 내게로 흘러 들어왔던 것이다. 

깊고, 무겁고, 슬픈, 그 모두이면서 그 무엇도 아닌 현묘한 삶. 우리의 이 비루한 삶도 가락을 가지고 흘러가고 있다. 삶의 그 소리를 듣기 위해, 그 모양을 보기 위해 우리는 온 밤을 새워 하늘을 빗겨 흐르는 살별들의 마주침을 보고 있다. 흥청대는 공간과 싱싱한 시간. 현대 양자론이 이론적으로 성취한 그 공간과 시간을 시인은 시로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론이 아니라 시이기 때문에 그것은 불꽃을 퉁기고 휘감긴다.

시는 표현하거나 지시하거나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가 하나의 물질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해가 안 된다면, 이 시를 한번 삼켜보시라!

(매일신문. 노태맹 시인 2015.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