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아픈 후회
황지우(1952- )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 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한낱 도덕이 시킨 경쟁심:
그것도 파워랄까, 그것마저 없는 자들에겐
희생은 또 얼마나 화려한 것이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의 말을 넣어주는 바람이
떠돌다 지나갈 뿐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다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 문학과 지성사. 1998)

내가 정말 누군가를 사랑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언제나 마음 아픈 일이다.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나는 내가 사랑이라는 것을 한 적이 있을까 하는 자책을 하게 된다. 사람에 대한 혹은 이른바 민중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이 나의 쁘띠 부르주아의 장식적 도덕과 권력 의지에 다름 아닌 것이 아닐까 하는 반성. 

시의 화자는 자신의 모든 말이 사막에서 죽은 짐승 귀로 흘러드는 의미 없는 모래 바람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은 이제 아무도, 그 어떤 믿음도 기다리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윤리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도 이 반성은 받아들일 만하다. 그런데 갑자기 시의 화자는 타인이 나를 믿지 않고 기대하지 않는다는 회한으로 시를 마무리 짓는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반성은 타인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결국 시인의 ‘뼈아픈 후회’는 타인의 시선에 의해 아직 내가 좌우되고 있다는 것을 돌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이 마음의 병을 일으킨다. 아무도, 아무 것도 기다리지 않고 이 생을 사랑하며 지나가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매일신문. 노태맹 시인 201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