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핀다
문 태준(1970- )

뜰이 고요하다
꽃이 피는 동안은
하루가 볕마른 마루 같다
맨살의 하늘이
해종일
꽃 속으로 들어간다
꽃의 입시울이 젖는다
하늘이
향기 나는 알을
꽃 속에 슬어놓는다
그리운 이 만나는 일 저처럼이면 좋다

(『가재미』. 문학과 지성사. 2006)

이 시는 읽을수록 아프다.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꽃을 기다리는, 꽃이 보고 싶은 시적 화자의 공허함 때문에 아프다. 봄꽃은 쓸쓸함에게 오히려 그의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봄볕이 따뜻한 마루에 앉아 시의 화자는 막 열리고 있는 꽃들을 바라보고 있다. 사방은 고요하고 뜰은 개화에만 몰두하고 있다. 그러나 시의 화자는 딴 생각에 빠져 있는 듯하다. 그리하여 다가오는 시적 사물들은 파편화되고, 그 사이사이를 보이지 않는 생각들이 벌여놓고 있다. 그 생각들은 맨살의 하늘, 꽃 속으로 들어가는 하늘, 젖은 꽃술, 향기나는 알을 슬어놓는 하늘 등 표상되지 않는 이미지들로 나타나 있다. 무엇이 그를 하늘-꽃-향기의 상투적 틀 속으로 끌어당기고 있을까.

몇 개월의 겨울 추위를 지나고 지금 우리는 봄을 기다리고 있다. 기다림은 단지 수동적인 받아들임 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앞으로 나아감이고 기대이고 손을 뻗는 환대일 것이다. 그러나 시의 화자는 그 봄과 기다림이 저처럼이면 <좋다>고 말한다. 저처럼이면 <좋겠다>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전자가 단지 규정하고 바라보는 태도라면 후자는 손을 내밀고 한발 내디디는 희망이다. 내가 움직이지 않는 봄이나 희망은 관념일 뿐인 것이다. 단지 시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매일신문. 노태맹 시인 2015.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