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노래
정현종(1939- )

물로 되어 있는 바다
물로 되어 있는 구름
물로 되어 있는 사랑
건너가는 젖은 목소리
건너오는 젖은 목소리
우리는 늘 안 보이는 것에 미쳐
병(病)을 따라가고 있었고
밤의 살을 만지며
물에 젖어 물에 젖어
물을 따라가고 있었고
눈에 불을 달고 떠돌게 하는
물의 향기(香氣)
불을 달고 흐르는
원수인 물의 향기여

(전문. 시선집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지식산업사. 1982)

꽃 핀 벚나무는 하루 종일 우우웅 소리를 내며 진동한다. 봄과 벌들이 공기를 흔들며 겨우내 흙이었던 벚나무의 눈을 뜨게 하고 있는 중이다. 꽃잎은 물과 공기의 얇고 부드러운 반죽. 나는 그 봄나무 아래 부드러운 공기에 휩싸여 물소리를 듣는다. 바슐라르의 표현처럼 물은 대지의 눈, 물은 대지의 시선. 그 시선들이 우리의 시간들을 바라보게 한다. 그리하여 바다도, 구름도, 사랑도 모두 물로 되어 있어 벚나무 아래 우리의 대화도 젖어있다.

그러나 물은 어디로 떠나가는 시선. 보이지 않는 곳을 찾아가는 시선의 시선. 물이 물에 젖듯이 사랑을 찾아서, 또 다른 사랑의 살을 찾아서 우리는 떠난다. 또한 시인의 운명으로 태어난 사람에게 물은 축복이자 형벌. 시인은 스미는 물의 영혼이면서 동시에 상승하는 불의 영혼인 까닭이다.

그런데 자연은 우리에게 시인과 어울리는 불의 날개를 가진 물의 영혼을 주었다. 알코올-술이 그것. 디오니소스에게, 시인에게 술이 없다면 시인은 날지 못할 것이고 물의 향기도 맡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원수인 술! 향기만 남긴 채 물은 증발해 버리고 불만 남아 시인을 태워버리는 원수인 술. 그래도..., 봄 밤 벚꽃 아래에서 오늘은 시인처럼, 물과 불인, 술 묵자!

(매일신문. 노태맹 시인 2015.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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