來如哀反多羅 9
이성복(1952- )

검은 장구벌레 입속으로 들어가는
고운 입자처럼
생은 오래 나를 길렀네
그리고 겨울이 왔네
허옇고 퍼석퍼석한 얼음짱,
막대기로 밀어 넣으면
다른 한쪽은 버둥거리며 떠오르고,
좀처럼 身熱은 가라앉지 않았네
아무리 힘줘도
닫히지 않는 바지 자크처럼
無聲의 아우성을 닮았구나, 나의 생이여
애초에 너는 잘못 끼워진 것이었나?
(이성복. 『래여애반다라』. 문학과 지성사)

또, 새해가 왔다. 나이가 들면서 새해 첫 날은 붉은 해를 바라보며 새로운 희망에의 의지를 다져야 한다, 는 것들이 이데올로기임을 알아차린다. 달력이 바뀌었다고 없던 새로운 희망이 생기겠는가? 그러나 어쩌면 이런 말은 너무 가혹할지 모르겠다. 희망조차도 꿈꾸지 못한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너덜너덜하고 아프겠는가?

삶이란 한쪽을 밀어 넣으면 다른 한쪽은 버둥거리면 떠오르는 얼음짱 같은 것이다. 뭉크의 그림처럼, 벌어진 바지처럼 입을 벌리고 절규하는 것이 삶이다. 그러나 시인은 상처를 드러내고 지하도에 엎드린 거지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왜 이 삶이 잘못 끼워졌느냐고 질문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도 질문해야 한다. 슬픔에 대해, 희망에 대해.

<래여애반다라>는 신라 향가의 이두문으로 ‘오다, 서럽더라’의 뜻으로 새겨진다 한다. 나는 이것을 이렇게 읽고 싶다. ‘오라, 슬픔을 받들고’. 희망은 지난 슬픔을 가슴 속에 새길 때에만 가능할 것이다. 새해에는 더 많이 슬퍼하자. 그래야 한다.

노태맹 시인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