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 그 세 겹의 무늬
정화진(1959- )

한결같은 무늬......, 세 겹의 괴로움이다
이끌리지도 그렇다고 남아 있는 것도 같지 않은
떠 흐르는 풀잎 같은 시간의 땅은
모래다
죽음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바람의 결을 빌린 땅
목이 잠기는 고요한 버들이 있다
봉두난발 마른 사람의 눈빛이 흐르다 멎는
멀리 강변에
괴로움은 깊고 깊어져
슬픔의 무늬를 짓는다
하염없이 한결같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겹의 무늬를 주르륵
(『고요한 동백을 품은 바다가 있다』. 민음사. 1994)

제목에 마음을 빼앗긴다. 고통의 노래에 마음을 빼앗긴다. 동백을 품은 붉고 푸른 바다에 마음이 잠긴다. 괴로움이 깊고 깊어진다면 그것은 어떤 무늬를 가질까?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몇 겹의 무늬는 현묘하거나 해탈한 무늬가 아니라 그저 봉두난발의 버려진 무늬일 뿐이다. 우리 삶이 점점 버들처럼 물에 잠기고 있다. 누군가의 말처럼 과거의 권력은 사람들을 죽게 하고 살게 내버려두었다면, 지금의 권력은 사람들을 살게 하고 죽게 내버려둔다. ‘중요한’ 사람들만 살게 만들어 두고 나머지는 알아서 살게 한다. 흐르지 않는 강은 뚱뚱해져 있고, 우리는 죽음의 노래를 듣게 될 것이다.

고요한 바다. 그러나 <낡은 옷의 사람들은 절름거리며/ 그들 몫의 생애를 건너가고> 있지만 그 고요한 바다는 <동백을 품은 채 누워 있다.> 붉고 푸른 바다. 20년이 지난 시가 우리의 현실 속에서 현재로서 읽힌다.

(매일신문. 노태맹 시인 2015.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