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포
김수영(1921-1968)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惰)와 안정을 뒤집어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김수영 전집-시』 민음사. 2003)

시는 정치의 영역이 아니다. 시인은 시인으로서 정치가가 되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시는 정신의 폭포다.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지는 그러한 시인의 정신이 죽은 사회는 이미 사회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수영의 이 시는 시의 힘과 시의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규정할 수 없는’,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는, ‘높이도 폭도 없’는 폭포는 우리의 생이 밤의 미지를 향해 내리 꽂히는, ‘나타(懶惰)와 안정을 뒤집어놓’는 역동과 봉기다. 지배 권력에 의해 이데올로기적으로 잊혀진 것. 현존의 헌정과 법규는 역동과 봉기에 의해 촉발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시는 여기까지다. 우리의 정치적 삶은 ‘높이’와 ‘폭’을 가진다는 것. 정치는 그렇게 각자의 높이와 폭을 견주는 것인 것이다. 

시의 한계, 그럼에도 그 한계조차 시의 힘이 된다. 떨어지고-떨어지고-떨어지고-부르고-떨어지는 그 반복 속에서 이 시는 곧은 힘을 얻는다. 그 힘이 우리를 정치적으로 살게 한다. 김수영이 큰 시인인 이유다.

(매일신문. 노태맹 시인.2015.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