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장 정일(1962- )

그랬으면 좋겠다 살다가 지친 사람들
가끔씩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
좋겠다 사철나무 그늘 아래 또 내가 앉아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내가 나밖에 될 수 없을 때
이제는 홀로 있음이 만물 자유케 하며
스물 두 살 앞에 쌓인 술병 먼 길 돌아서 가고
공장들과 공장들 숱한 대장간과 국경의 거미줄로부터
그대 걸어나와 서로의 팔목 야윈 슬픔 잡아 준다면
좋을 것이다 그제서야 조금씩 시간의 얼레도 풀어져
초록의 대지는 저녁 타는 그림으로 어둑하고
형제들은 출근에 가위 눌리지 않는 단잠의 베개 벨 것인데
한 켠에서 되게 낮잠 자 버린 사람들이 나즈막히 노래 불러
유행 지난 시편의 몇 구절을 기억하겠지
바빌론 강가에 앉아
사철나무 그늘을 생각하며 우리는
눈물 흘렸지요

(『햄버거에 대한 명상』 민음사. 1987)

가장 장정일 답지 않은 시가 시집의 맨 처음에 올라가 있다. 아나키즘과 기독교 공산주의 경전 위에 사철나무의 그늘을 덮어놓은, 장정일 특유의 빛이 보이지 않는 만들어진 시 같다. 도대체 키 낮은 사철나무 아래에서 어떻게 쉰단 말인가? 

그러나, 그럼에도 이 시는 좋다. 지친 사람들이 사철나무(상록수라고 해 두자) 그늘 아래에서 공장과 국가의 거미줄로 부터 풀려나 서로의 팔목 야윈 슬픔을 위로해 주는 노을 붉은 하늘의 풍경은 상상만으로도 아름답다. 시의 아나키즘적, 낭만적 경향은 시의 한계이기도하지만 시의 힘이기도 하다. 

근래의 장정일은 이 시의 세계관으로 다시 돌아오고 혹은 이미 그것을 넘은 듯이 보인다. 작품으로 그것이 보여 졌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이 시집을 펼쳐 보면서 그 동안 생각해보지 못했던, 내 첫 시집에 남겨진 그의 흔적을 느끼면서 조금 놀랐다. 막걸리 잔을 앞에 두고 그와 보냈던 격동의 20대와 술친구로 보낸 30대와 40대가 생각난다. 오늘은 몇 년 째 대구를 떠난 그와 사철나무 그늘 아래에서, 막걸리 한 잔 하고 싶다.

(매일신문. 노태맹 시인 2015.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