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아버지가 거기서 탈출하신 건 옳았습니다. 거기까지는 옳았습니다. 제가 월북해서 본 건 대체 뭡니까? 이 무거운 공기. 어디서 이 공기가 이토록 무겁게 짓눌려 나옵니까? 인민이라구요? 인민이라구요? 인민이 어디 있습니까? 자기 정권을 세운 기쁨으로 넘치는 웃음을 얼굴에 지닌 그런 인민이 어디 있습니까?

바스티유를 부수던 날의 프랑스 인민처럼 셔츠를 찢어서 공화국 만세를 부르던 인민이 어디 있습니까? 저는 프랑스 혁명 해설 기사를 썼다가, 편집장에게 욕을 먹고, 직장 세포에서 자아비판을 했습니다. 프랑스 혁명은 부르주아 혁명이라구, 인민의 혁명이 아니라구요. 저도 압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고 싶었던 건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때 프랑스 인민들의 가슴에서 끓던 피, 그 붉은 심장의 애기를 하고 싶었던 겁니다.

시라구요? 오, 아닙니다. 아버지, 아닙니다. 그 붉은 심장의 설레임, 그것이야말로 모든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와 자본주의자들을 가르는 단 하나의 것입니다. 퍼센티지가 문제인 게 아닙니다. 생산지수가 문제인 게 아닙니다. 인민 경제 계획의 초과 달성이 문젠 게 아닙니다. 우리 가슴 속에서 불타야 할 자랑스러운 정열, 그것만이 문젭니다. 이남에는 그런 정열이 없었습니다. 있는 것은, 비루한 욕망과, 탈을 쓴 권세욕과, 그리고 섹스뿐이었습니다.

서양에 가서 소위 민주주의를 배웠다는 놈들이 돌아와서는, 자기 몇 대조가 무슨 판서 무슨 참판을 지냈다는 자랑을 늘어놓으면서, 인민의 등에 올라앉아 외국에서 맞춘 아른거리는 구둣발로 그들의 배를 걷어차고 있었습니다. 도시 어떻게 된 영문인지, 일본놈들 밑에서 벼슬을 지내고 아버지 같은 애국자를 잡아 죽이던 놈들이 무슨 국장, 무슨 처장, 무슨 청장 자리에 앉아서 인민들을 호령하고 있습니다.

남조선 사회는 백귀야행(百鬼夜行)하는 도시 알 수 없는 난장판이었습니다. 청년들은, 섹스와 제즈와 그림 속의 미국 여배우의 젖가슴에서 허덕이지 않으면, 재빨리 외국인을 친지로 삼아서 외국으로 내빼고 있었습니다.

유학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은 그 험한 사회의 혼탁에서 잠시 몸을 빼고, 아름다운 아내와 쪼들리지 않을 만큼 한 살림을 꾸릴 수 있는 간판과 기술을 얻기 위해서, 외국으로 간 것입니다. 부르주아 사회의 가장 실팍한 뼈대를 이루는, 약삭빠른 수재들 말입니다. 이도저도 못 하는 우리 같은 것은, 철학이니 예술이니 하는, 19세기 구라파의 찬란한 옛날 애기책을 뒤적이면서, 자기 자신을 속이려고 했습니다.

지금도 그러고 있는 사람이 남조선에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들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심장의 소유자들입니다. 젊은 사람치고, 이상주의적인 사회 개량의 정열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만 그들은, 남조선이라는 이상한, 참으로 이상한 풍토 속에서는 움직일 자리를 가지지 못했다는 것뿐입니다.

저는 그런 풍토 속에서 성격적인 약점이 점점 커지더군요. 저는 새로운 풍토로 탈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월북했습니다. 어리광을 피우려는 저의 손길을, 위대한 인민공화국은 매정스레 뿌리치더군요.

편집장은 저한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명준 동무는, 혼자서 공화국을 생각하는 것처럼 말하는군. 당이 명령하는 대로 하면 그것이 곧 공화국을 위한 거요. 개인주의적인 정신을 버리시오’라구요. 아하, 당은 저더러는 생활하지 말라는 겁니다. 일이면 일마다 저는 느꼈습니다 . 제가 주인공이 아니고 ‘당’이 주인공이란 걸. ‘당’만이 흥분하고 도취합니다. 우리는 복창만 하라는 겁니다. ‘당’이 생각하고 판단하고 느끼고 한숨지을 테니, 너희들은 복창만 하라는 겁니다.

우리는 기껏해야 ‘일찍이 위대한 레닌 동무는 말하기를 ……’‘일찍이 위대한 스탈린 동무는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모든 것은, 위대한 동무들에 의하여, 일찍이 말해져 버린 것입니다. 이제는 아무 말도 할 말이 없습니다. 우리는 인제 아무도 위대해질 수 없습니다. 아 이 무슨 짓입니까? 도대체 어쩌다 이 꼴이 된 겁니까? 저는 월북한 이래 일반 소시민이나 노동자 농민들까지도 어떤 생활 감정을 가지고 살고 있는지 알았습니다. 그들은 무관심할 뿐입니다. 그들은 굿만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끌려다닙니다. 그들은 앵무새처럼 구호를 외칠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인민이란 그들에겐 양떼들입니다. 그들은 인민의 그러한 부분만을 써먹습니다. 인민을 타락시킨 것은 그들입니다. 양들과 개들을 데리고 위대한 김일성 동무는 인민공화국의 수상이라? 하하하…….”


(최인훈, ‘광장’에서)


 ① 싸리 밭에 개팔자로군. 

 ② 그래도 산 개가 죽은 정승보다야 낫지. 

 ③ 조약돌을 피하다가 수마석(水磨石) 만난 꼴이 되었군. 

 ④ 청승은 늘어가고 팔자는 오그라들겠군. 

 ⑤ 쪽박 쓰고 벼락 피하려던 꼴이지.


[Question-sokdam06]


한국 Korea Tour in Subkorea.com Road, Islands, Mountains, Tour Place, Beach, Festival, University, Golf Course, Stadium, History Place, Natural Monument, Paintings, Pottery, K-jokes, UNESCO Heritage, 중국 China Tour in Subkorea.com History, Idioms, UNESCO Heritage, Tour Place, Baduk, Golf Course, Stadium, University, J-Cartoons, 일본 Japan Tour in Subkorea.com Tour Place, Baduk, Golf Course, Stadium, University, History, Idioms, UNESCO Heritage, E-jokes, 인도 India Tour in Subkorea.com History, UNESCO Heritage, Tour Place, Golf Course, Stadium, University, Paintin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