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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신뢰

이는 또 아들같이 여기는 선수들에게 퍼거슨 감독이 보내는 신뢰와 직결된다. 특히 선수들이 문제가 생겼을 때 항상 함께 고민하고 그들을 지원하는 그런 것이다.

1990년대 중반 맨유 팬들에게 신과 같은 존재였던 에릭 칸토나의 예가 대표적이다. 칸토나는 ‘프랑스 축구계의 앙팡테리블’이라고 불리던 존재였다. 남다른 카리스마와 골에 대한 집중력, 공간 창출 능력을 겸비한 공격수였지만 프랑스 대표팀 감독의 전술을 공개석상에서 비난하거나 심판에게 유니폼 상의를 벗어 던지는 등의 행동으로 ‘일종의 부적응자’로 찍혀 영국으로 왔다.

하지만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리즈 유나이티드를 우승으로 이끌고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코칭스태프와 불화를 겪던 그를 퍼거슨 감독이 맨유의 새로운 시대를 열 ‘리더감’으로 지목, 데리고 왔다. 퍼거슨 감독의 눈은 정확했다. 칸토나가 뛴 5시즌 동안 맨유는 리그 4회 우승, FA컵 2회 우승을 일궜다.

우승하지 못한 한 시즌은 칸토나가 상대 팀 팬과 ‘쿵푸킥’사건을 일으킨 때였다. 칸토나가 크리스탈 팰리스의 팬인 매튜 시몬스에게 '이단 옆차기'를 날려 시즌 나머지 경기 출전정지 및 다음 시즌 10경기 출전 정지의 중징계를 받았을 당시, 칸토나는 더 이상 잉글랜드에서 뛰기 힘든 분위기였다.

하지만 퍼거슨 감독은 그를 감싸 안았다. 칸토나가 팀에 남고 싶다고 하자 적극적으로 그를 지지하고 나섰고 결국 지켜냈다.

칸토나 뿐만이 아니었다. 베컴이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르헨티나전에서 페널티킥을 허공으로 날려 살해 위협까지 당할 때도 그랬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웨인 루니와 일명 윙크 사건(영국 언론은 호날두가 루니의 파울을 주심에게 일러바쳐 퇴장시켰다고 말한다)에 휘말렸을때도 그랬다. 이들을 끝까지 지지하고 보호했다.

칸토나는 다른 팀으로부터 이적 제의를 받으면 ‘맨체스터에서 죽고 싶다’고 일축했다. 최근 레알 마드리드 이적설이 나오는 호날두의 거취도 과거의 예를 떠올리면 ‘퍼거슨 감독이 원치 않으면 가지 않는다’는 쪽에 걸고 싶다. 호날두는 ‘윙크 사건’때에도 레알 마드리드행이 거론됐으나 퍼거슨 감독이 직접 포르투갈까지 가서 설득하는 정성을 기울인 끝에 맨유에 남아 이번 시즌 프리미어리그 득점왕까지 오를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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