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국지 인간력: 중국 2000년, 인간학의 보고
    과화 저/차혜정 역 | 스마트비즈니스
    
정가 12,000원
출간일 2008년 06월 18일
271쪽 | 478g
ISBN-13 9788992124409

▶ 지은이 소개

저자 : 과화
길림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원에서 한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교사와 기자, 자유기고가로 활동하다가 중국 유명 잡지에 문장을 발표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중국 시대별 역사인물 연구 작업에 오랫동안 몰두하면서 강연활동을 계속하고 그 성과를 발표해왔다. 대표작으로는 《다시 보는 홍루몽》《역사는 기회를 알려주지 않는다》 등이 있다.

역자 : 차혜정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한중통역번역학과를 졸업한 뒤 베이징 대외경제무역대학에서 공부했다.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면서 가톨릭대학교 및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에서 중국어 통번역 강의를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CEO의 생각을 읽어라》《중심 리더십》《착점》《30대 직장인을 위한 자기경영노트》《역경에서 배우는 진리》《제왕의 길》《바다의 역사로 보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해적이야기》 등이 있다.

▶ 책소개

소설과 역사의 차이를 분석해 《삼국지》를 ‘역발상’으로 설명한 책이다. 이 책은 《삼국지》의 주요 영웅인 조조, 여포, 유비, 손권, 사마의, 제갈량, 곽가, 관우, 조운을 통해 삼국 시대라는 독특한 시기의 얽히고 설킨 역사를 소개하면서, 난세를 풍미했던 이들의 모습에 투영된 인간의 다양한 속성을 흥미롭게 파헤친 책이다. 특별히 아홉 사람을 택한 이유는 그들이 현대인의 역할모델로서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이 책에 제시된 9인의 영웅들을 통해 누가 적’이며 ‘동지’인지 알려주고, 나아가 어떻게 그들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사람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물음에서부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바람직하게 풀어나가는 방법론에 이르기까지, ‘사람’에 관한 모든 것을 보여주는 ‘인간학’의 교과서인 《삼국지》의 영웅들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고 ‘사람’과 ‘세상’을 보는 혜안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차례

머리말 《삼국지》 영웅들을 통해 사람을 읽는다

제1장 조조 -소인배의 모습을 한 진정한 군자
두 얼굴을 가지고 사람을 죽이다
거만한 웃음 뒤에 숨겨진 진실
귀신같은 용병술?
소인배인가 군자인가

제2장 여포 -역사가 만들어낸 풍운아
사람은 여포가 으뜸이요, 말은 적토마가 최고
의리가 없는 것은 내 탓이 아니다
의리의 반대편에 섰다고 소인배는 아니다
장수가 어찌 죽음을 두려워하랴
책략이 있고 없음은 군자만이 알지니
장점도 많았으나 단점이 치명적
천하는 누구에게나 몫이 있다

제3장 유비 -제왕술의 대가
황금빛 명함
거짓 인생의 일면들
백수건달이 매력적인 이유
유방의 제왕술을 역할모델로 삼다

제4장 손권 -적의 적은 나의 편
패왕의 계승자
흐름을 파악하는 눈, 장점을 아는 눈
당근요법과 채찍요법
반쯤은 꿈꾸고 반쯤은 깨어 있으며
준마도 늙으면 둔한 말보다 못하다

제5장 사마의 -인내심의 교과서
제갈량이 사마의를 두려워한 까닭
꾀병으로 정권을 얻다
신비의 베일 뒤에 감춰진 계략
참는 자에게 내려진 선물
최후의 승자가 받은 가혹한 저주

제6장 제갈량 -인품으로 무능을 덮다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않으니
쩨쩨한 전략가
뜻은 컸으나 무능했던 천재
신출귀몰할 수가 없었던 처지
읍참마속의 모순
이길 수 있는 싸움만 한다
인품은 능력보다 위대하다

제7장 곽가 -똑똑한 아첨쟁이
주인을 고르는 안목
십승십패설의 진실
세상이 놀란 계책
살아서는 계책을, 죽어서는 공을
제갈량과의 차이

제8장 관우 -신이 된 무장
강호 제일의 킬러
억지로 지킨 충절과 의리
여우와 너구리 사이에서 홀로서기

제9장 조운 -이미지의 위력
우상형 영웅의 이모저모
첫 출전부터 강렬한 이미지
둘을 죽여 수백을 물리치다
오호상장의 실상

▶ 출판사 리뷰

승자勝者들이 《삼국지》를 읽는 진짜 이유가 밝혀진다!

《삼국지》는 ‘사람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물음에서부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바람직하게 풀어나가는 방법론에 이르기까지, ‘사람’에 관한 모든 것을 보여주는 ‘인간학’의 교과서다.
역사는 변화하고 반복된다. 《삼국지》가 처음 등장할 때와 지금은 모든 것이 변했지만, 인간에 대해서는 그 어느 것도 변한 것이 없다. 《삼국지》 영웅들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고 ‘사람’과 ‘세상’을 보는 혜안을 키워보자.

조조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그가 살인한 배경은 어떤 것이며, 그의 웃음에는 과연 어떤 깊은 뜻이 있는가? 과연 용병술을 귀신같이 구사했는가?
유비는 무엇 때문에 ‘황숙’이라는 금빛 타이틀을 붙이고 다녔을까? 그는 허위로 가득한 인물이었을까? 그와 한고조와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역사의 풍운아 손권은 어떻게 인재를 모집했을까? 그의 ‘당근과 채찍’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당신은 제갈량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가? 그가 재능이 없고 쩨쩨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으며 군사전문가가 아니라는 사람도 있다. 그들의 의견에 동의할 수 있겠는가?
곽가를 아는가? 그는 어째서 ‘삼국 제일의 모사’라고 불리는가?
삼국 제일의 킬러는 과연 누구인가?
무공이 최고였던 인물은?
똑똑하게 주인을 선택하고 아첨도 똑똑하게 했던 삼국 제일의 인물은 누구일까?
출중한 외모, 섬세한 마음씨에 싸움까지 잘한 인물은?

조조曹操
―소인배의 모습을 한 진정한 군자
동작대(銅雀台)를 축조한 후 많은 사람들이 조조의 공덕을 치하하면서 그 명을 받드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자 조조는 술을 마신 뒤 마음속에 있는 말을 털어놓았다.
“나는 국가를 위해 적을 토벌해 공을 세우려는 뜻을 세웠다. 후(侯)에 봉해지고 정서장군(征西將軍)에 임명되어 그 뒤 내 묘비명에 ‘한(漢)나라 고(故) 정서장군 조후(曹侯)의 묘’라 쓰이기를 바랐다. 재상이 되어 신하로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으니 달리 무슨 소원이 있겠는가? 만약 나라에 내가 없었다면 몇 사람이 황제를 칭하고 왕을 자처했을지 알 수 없다. 나는 문왕의 덕성에 대한 공자의 가르침을 늘 명심하고 있다. 내가 무기를 내려놓으면 다른 사람에게 화를 입을까 실로 두렵다. 또한 내가 패망하면 나라가 기울어져 위험에 빠질 것이다. 허명(虛名)을 탐해 실화(實禍)를 불러올 수는 없다.”
조조의 말에는 조금의 거짓도 없었다. 그는 명분에 연연하지 않는 초탈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 아니 적어도 황제 자리에는 관심이 없었다. 조조가 위(魏)나라 왕에 오를 때도 헌제가 진정으로 원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조조 본인이나 그의 수하가 어떤 위협수단을 쓴 사실을 발견할 수 없다―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정식으로 책봉되었다.
“주(周)나라 문왕(文王)이 살아있을 당시 천하의 토지 중 3분의 2가 이미 그의 것이었지만 문왕은 변함없이 상(商)나라 주왕(紂王)의 신하로 남아 있었소. 그러다가 아들인 무왕(武王) 대에 와서야 상나라를 멸망시키고 주 왕조의 천자가 되었소. 만일 천명이 나한테 내려졌다면 나는 주문왕의 뒤를 따르겠소!”
조조는 이 약속을 끝까지 지켰다. 이렇듯 원칙적인 문제를 처리할 때 당당했으니 조조야말로 소인배의 모습을 한 진정한 군자라 할 수 있다.

여포呂布
―역사가 만들어낸 풍운아
여포는 《삼국지》에 등장하는 무장 중 가장 개성이 뚜렷한 인물로 맹목적인 충성을 거부하고 남의 밑에서 오래 있기를 싫어했다. 모든 것이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으로 귀결되며 개인의 욕망과 기호에서 출발했다. 충절이나 부자의 정 따위에 속박당하지 않아 이성적인 ‘자유’와 ‘자율’을 실천했다고 볼 수 있다. 정원(丁原)을 죽인다고 하면 죽였고 동탁(董卓)을 죽인다고 하면 반드시 죽였으니 이 얼마나 단호한 결단력인가.
여포는 《삼국지》의 영웅 중 가장 뛰어나고 용맹한 무공을 자랑하며 지략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인덕도 있는 편이었다. 주위에 좋은 친구나 수하를 둔 것도 여포가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기에 가능했다. 여포가 사람을 쓰는 데도 본받을 점이 있었다. 전투에서 진 뒤에 대장 고순(高順) 등이 투항하지 않고 진궁은 결연히 죽음을 택한 것도 여포가 인심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포에게는 인재를 알아보는 눈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에 비해 단점으로 생긴 파장은 매우 컸다. 여포는 전투력은 훌륭하지만 그러다 보니 지나치게 무력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었다. 마지막 전투에서 진궁(陳宮)의 건의를 묵살한 이유는, 성을 나가자는 측과 성을 지키자는 측의 주장이 팽팽하게 대립되었을 때 진궁에게 성을 맡기자니 안심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포는 사람을 배반한 적도 있고 배반당한 적도 있는 몸이었다. 여포의 이런 판단은 실패로 돌아왔다.

유비劉備
―제왕술의 대가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과 그의 먼 후손으로 촉한의 황제가 된 유비는 비슷한 점이 많다. 유방과 유비는 둘 다 제왕술(帝王術)의 대가였다. 유비는 선조 유방의 제왕술을 열심히 모방했다. 유비야말로 중국 역사상 제왕술을 처음으로 집대성한 인물이다. 제왕술의 핵심은 단연 교활함이다. 표면적으로는 인의와 덕을 내세워야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으며 사람을 갖고 놀면서도 당사자가 이를 느끼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유비의 제왕술은 유방을 능가했다.
이 두 사람은 비슷한 점이 많다. 우선 둘 다 미천한 깡패 출신으로 책읽기를 좋아하지 않고 천하 호걸과 사귀는 데 힘을 기울였다. 두 사람 다 황제가 되려는 포부를 갖고, 농민을 위한 봉기로 사업을 일으켰다. 주위의 인재로 봤을 때는 유방은 장량(張良) 등 삼두마차를 이용했으며 유비는 제갈량과 방통(龐統)을 곁에 두었다. 그리고 두 사람 다 인의(仁義)를 앞세우면서도 실제로는 불의를 저질렀다. 사실 두 사람은 패전의 장수라고 할 수 있다. 유비는 싸워서 이긴 것보다 진 횟수가 많았으면서도 기반을 잡았다. 유방은 연전연패를 거듭하면서도 결국 천하를 통일했다. 둘은 서로 약속이나 한 듯 가정은 돌보지 않았다. 유방은 처를 오랫동안 모른 척했고 유비는 처를 의복 정도로 생각했다. 전쟁에서 패해 도망갈 때도 두 사람 다 처자식을 데리고 가지 않았다.

손권孫權
―적의 적은 나의 편
손권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를 지켰으며, 성격이 쾌활하고 인자하면서도 결단력이 있었다. 손책(孫策)은 손권과 책략을 논하면서 손권의 뛰어남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손권에게 또 하나의 장점이 있다면 형 손책이나 아버지 손견(孫堅)을 닮아 협객을 좋아하고 인재를 아낀다는 점이다. 이를 일찍부터 간파한 손책은 죽기 전에 손씨 세력의 계승자로 손권을 지목했던 것이다.
과연 손권은 손책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계급의식이 강했던 당시 사회 분위기에서 손권은 우수한 인재를 보면 출신이나 경력을 따지지 않고 발탁하여 중요한 자리에 앉혀서 잘못된 사회 풍조를 바로잡는 데 앞장섰고 부친과 형의 부하나 친구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는 도량이 넓고 사람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공과 사를 철저히 구별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사람들은 손권이 반쯤은 꿈을 꾸고 반쯤은 깨어 있다고 말한다. 손권은 중원을 통일하겠다는 포부가 있으면서도 자신의 부족함을 정확하게 알기 때문에 반만 꿈을 꾸고 반은 깨어 있으면서 기회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사마의司馬懿
―인내심의 교과서
사마의의 인내심은 삼국 인물 중 단연 으뜸이다. 전투에서 패해 상방곡(上方谷)의 불 속에 갇혀 있을 때 다행히 큰 비가 내려서 부자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촉군이 아무리 도발해 와도 웬만해서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니 제아무리 신출귀몰한 제갈량이라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았던 사마의는 양측의 정세를 정확하게 예측했다. 버티겠다고 결심을 했으면 끝까지 밀고 나갔다. 상대가 아무리 모욕을 주어도 참는 것이 이익이었기 때문이다. 사마의의 참을성은 결코 피동적인 참을성이 아니라 상대, 특히 제갈량의 동정을 살펴 기회를 잘 포착하는 참을성이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사마의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부정적이다. 사마의는 ‘황제의 아버지’라는 정치적 지위를 누리며 그 지위가 희창(姬昌), 조조와 동등했다. 진나라가 연속되는 시간도 300여 년이 되었으니 당시 사마씨의 상황은 그렇게 나쁘게만 볼 수 없다. 개인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이유는 사마씨 집안이 조씨 집안을 배신했다는 정도다.

제갈량諸葛亮
―인품으로 무능을 덮다
소설 《삼국지》에 등장하는 제갈량은 누구에게나 재주 많은 인재로 알려져 있다. 특히 병법을 구사하는 데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그러나 정사를 살펴보면 이야기가 다르다. 뜻밖에도 이 분야에 생각만큼 뛰어나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수준 이하의 형편없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삼국지》를 보면 수없이 많은 부름에도 좀처럼 움직이지 않던 제갈량이 유비의 삼고초려(三顧草廬)에 응하면서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맹활약을 펼쳤다. 먼저 ‘융중대(隆中對)’ 편에서 시국을 예리하고 정확하게 분석했고, 이어지는 적벽대전(赤壁大戰)에서는 적벽과 신야에 화공을 퍼부었다. 제갈량은 이로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실제 역사에서 그의 발자취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정사에서도 융중대가 나오지만 여기서는 제갈량의 정치적 재능을 보여주는 데 그칠 뿐, 적벽의 화공계도 사실은 황개(黃蓋)가 동원한 계책이다. 적벽대전 후 유비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질 때까지 제갈량은 대부분의 시간을 후방의 행정관리에 전념하고 군사적으로는 이렇다 할 공을 세우지 못했다.
제갈량이 후세 사람들의 호평을 얻는 이유는 많다. 그것은 그의 군사적 재능 때문이 아니라 그의 고상한 인품 때문이다. 유비가 자식을 부탁한 것도 제갈량이 좋은 평가를 받게 했다. 그리고 제갈량은 정치를 공평하게 했다. 비록 마속(馬謖)을 죽이고 관우에게는 아량을 베푸는 이중적 조치를 하기는 했으나 대부분의 일은 공평하게 처리했다. 이렇게 하니 사람들은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청렴결백한 것도 제갈량의 큰 장점이다. 얼마나 청렴결백했던지 그가 죽을 때 남긴 ‘임종유표(臨終遺表)’에 보면 입던 옷 몇 벌 말고는 재산이 없었다고 한다.

곽가郭嘉
―똑똑한 아첨쟁이
아무리 잘 짜인 책략이라고 해도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단순한 계책만 못하다. 그리고 계략을 잘 짜도 실행되지 않는다면 아무 대책도 세우지 않느니만 못하다. 곽가는 독특한 혜안으로 문제를 날카롭게 분석하는 능력이 있었다.
곽가의 십승십패설(十勝十敗設)이 아부성 내용으로 채워졌다고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원소가 의심이 많고 결단력이 없으며 충언을 받아들이지 않는 등 필연적인 실패요인을 안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십승십패설은 원소와 조조를 비교?분석해서 내놓은 논점이다. 곽가는 조조에게 훌륭한 전략을 제공했다. 조조 전반기의 찬란한 전과는 모두 곽가가 안겨준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곽가가 조조의 전폭적 신임을 받았다는 것이다. 훌륭한 군사책략가란 그 능력이 출중한 것 이상으로 주공에게 신임을 받아야 한다. 아쉽게도 많은 인재들이 그렇지 못했다. 《삼국지》의 제갈량은 사실 정사의 곽가를 토대로 쓴 것이다. 책략이 뛰어나고 주공의 신임을 받는 것도 그렇다.
정사에서 곽가는 초일류의 군사전문가였지만, 제갈량은 정치적 능력은 뛰어나나 군사적 능력은 떨어졌다. 두 사람의 차이는 여기에 있다.

관우關羽
―신이 된 무장
중국인들은 역사에 장식하기를 좋아한다. 관우의 이미지에도 원래보다 많은 수정을 가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관우의 이미지 중 대부분은 나관중의 붓끝에서 나온 것이다. 창작의 수요 때문에 관우의 대부분이 실제와 다른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사실 역사 속의 관우는 충절과 의리의 모델은 아니었다. 심지어 일반인의 기준에도 못 미치는 부분이 많았다. 관우는 일생을 용감무쌍하게 살았으며 말이 많지 않고 내성적인 편이다. 이런 사람 중에는 놀랄 정도로 냉정한 성격이 많다. 또한 이런 유형은 킬러의 자질을 갖추었다. 형가가 태산이 무너지는 앞에서도 전혀 요동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들의 눈에서 반드시 완수해야 할 임무만이 있으며 두려움이라든지 득실의 여부, 이성적인 판단 같은 것이 없다.
킬러는 공포를 느끼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들을 두려워한다. 일부에서는 관우가 마음이 약하고 정이 많다고 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그가 정이 많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정이 많다는 것이 의리와 같은 의미는 아니다. 충의는 더욱 아니다. 이런 종류의 정은 강호에서 잘 통한다. 의리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대의를 지키는 것은 아니다.

조운趙雲
―이미지의 위력
조운은 나관중이 《삼국지》에서 정성들여 그린 캐릭터다. 가장 완벽한 영웅의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잘생기고 출중한 외모, 담이 크면서도 섬세한 마음씨, 고상한 인품과 덕을 고루 갖춘 인물이다. 조운은 관우, 장비와 함께 처음부터 유비를 추종하던 인물로 사람들은 그를 도원결의(桃園結義)에 끼워넣기도 한다.
그래서 경극에서는 조운이 ‘4장군’의 한 사람으로 소개된다. 수십 기의 병력으로 조조의 대군에 맞선 대담함을 두고 후세에서 그를 촉한의 ‘오호상장(五虎上將, 관우, 장비, 조운, 마초, 황충)’으로 부른다. 1위에 여포, 2위에 조운, 3위는 전위로 순위를 매기기도 한다. 비록 《삼국지》에서 조운이 활약을 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유비와 제갈량은 조운에게 호의적이지만은 않았다. 유비의 세력이 약했던 초기와 관우, 장비가 너무 바쁠 때만 조운에게 중요한 임무가 주어졌을 뿐, 일할 사람이 많아지면 조운은 다시 한쪽으로 비켜 있어야 했다.
그러나 후주(後主) 유선(劉禪)의 목숨을 두 번이나 구해준 일이 어디 보통 공로인가? 그런데도 조운은 중용되지 못했다. 그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조운이 명문대가의 자손이 아닌 평민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중국 역사에서 문벌제도는 서한 후기부터 시작되었다가 동한 때 가장 심했다. 그러다가 당나라 시대에 가서야 차츰 꼬리를 감췄다. 한말은 군웅이 할거하던 난세였다. 이때 문벌제도는 타격을 받았으나 그 생명력은 질겼다.


소설 三國演義
第001 - 019回 桃園結義, 除董卓, 三讓徐州, 斬呂布
第020 - 038回 煮酒論英雄, 千里走單騎, 滅袁紹, 三顧茅廬
第039 - 059回 長板坡, 赤壁之戰, 三氣周瑜, 戰馬超
第060 - 080回 入西川, 逍遙津, 取漢中, 失荊州, 魏蜀稱帝
第081 - 105回 彝陵之戰, 七擒孟獲, 六出祁山,
第106 - 120回 九伐中原, 破西蜀, 三分歸一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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