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도(靑山道) - 박두진(朴斗鎭)

산아. 우뚝 솟은 푸른 산아.
철철철 흐르듯 짙푸른 산아.
숱한 나무들, 무성히 무성히 우거진 산마루에,
금빛 기름진 햇살은 내려오고,
둥둥 산을 넘어, 흰구름 건넌 자리 씻기는 하늘.
사슴도 안 오고
바람도 안 불고,
너멋골 골짜기서 울어오는 뻐꾸기.

산아. 푸른 산아.
네 가슴 향기로운 풀밭에 엎드리면,
나는 가슴이 울어라.
흐르는 골짜기 스며드는 물소리에,
내사 줄줄줄 가슴이 울어라.
아득히 가버린 것 잊어버린 하늘과,
아른아른 오지 않는 보고 싶은 하늘에,
어쩌면 만나도질 볼이 고운 사람이,
난 혼자 그리워라. 가슴으로 그리워라.

티끌 부는 세상에도 벌레 같은 세상에도,
눈 맑은 가슴 맑은 보고지운 나의 사람.
달밤이나 새벽녘,
홀로 서서 눈물어린 볼이 고운 나의 사람.
달 가고 밤 가고, 눈물도 가고,
티어 올 밝은 하늘 빛난 아침 이르면,
향기로운 이슬밭 푸른 언덕을,
총총총 달려도 와 줄 볼이 고운 나의 사람.

푸른 산 하나절 구름은 가고,
골 넘어, 골 넘어, 뻐꾸기는 우는데,
눈에 어려 흘러가는 물결같은 사람 속,
아우성쳐 흘러가는 물결같은 사람 속에,
난 그리노라. 너만 그리노라.
혼자서 철도 없이 난 너만 그리노라.  

<해, 19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