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부원(多富院)에서 - 조지훈(趙芝薰)

한달 농성(籠城) 끝에 나와보는 다부원(多富院)은
얇은 가을 구름이 산마루에 뿌려져 있다.

피아(彼我)공방(攻防)의 포화(砲火)가
한달을 내리 울부짖던 곳

아아 다부원은 이렇게도
대구(大邱)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었고나.

조그만 마을 하나를
자유(自由)의 국토(國土) 안에 살리기 위해서는
한해살이 푸나무도 온전히
제 목숨을 다 마치지 못했거니

사람들아 묻지를 말아라
이 황폐(荒廢)한 풍경(風景)이
무엇 때문의 희생(犧牲)인가를.....

고개 들어 하늘에 외치던 그 자세대로
머리만 남아 있는 군마(軍馬)의 시체

스스로의 뉘우침에 흐느껴 우는 듯
길옆에 쓰러진 괴뢰군전사

일찍이 한 하늘이 아래 목숨 받아
움직이던 생령(生靈)들이 이제

싸늘한 가을바람에 오히려
간 고등어 냄새로 썩고 있는 다부원(多富院)

진실로 운명의 말미암음이 없고
그것을 또한 믿을 수가 없다면
이 가련한 주검에 무슨 안식(安息)이 있느냐

살아서 다시 보는 다부원(多富院)은
죽은 자(者)도 산 자(者)도 다 함께
안주(安住)의 집이 없고 바람만 분다

<역사 앞에서, 19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