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의 여행        - 정한모(鄭漢模)
- 아가의 방(房) 5

아가는 밤마다 길을 떠난다.
하늘하늘 밤의 어둠을 흔들면서
수면(睡眠)의 강(江)을 건너
빛 뿌리는 기억(記憶)의 들판을,
출렁이는 내일의 바다를 날으다가
깜깜한 절벽(絶壁),
헤어날 수 없는 미로(迷路)에 부딪히곤
까무라쳐 돌아온다.

한 장 검은 표지를 열고 들어서면
아비규환하는 화약(火藥) 냄새 소용돌이,
전쟁(戰爭)은 언제나 거기서 그냥 타고
연자색 안개의 베일 속
파란 공포(恐怖)의 강물은 발길을 끊어 버리고
사랑은 날아가는 파랑새
해후(邂逅)는 언제나 엇갈리는 초조(焦燥)
그리움은 꿈에서도 잡히지 않는다.

꿈길에서 지금 막 돌아와
꿈의 이슬에 촉촉이 젖은 나래를
내 팔 안에서 기진맥진 접는
아가야!
오늘은 어느 사나운 골짜기에서
공포의 독수리를 만나
소스라쳐 돌아왔느냐.

<사상계, 196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