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뾰족한 방법이 없어 막다른 상황에 이름 

조선시대(朝鮮時代) 억불정책(抑佛政策)은 승려들로 하여금 두 가지 방향에서 활로를 모색케 했다. 

사찰을 존속기키는 것과 불법(佛法)의 맥을 잇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부 승려들은 廢寺(폐사)를 막기 위해 온갖 고난을 이겨내고 사원(寺院)의 유지 경영에 헌신했다. 

이와는 달리 속세를 피해 운둔하면서 참선(參禪)과 독경(讀經)으로 불법(佛法) 을 이은 승려도 많았다. 전자(前者)를 사판승(事判僧 山林僧), 후자(後者)를 이판승(理判僧 工夫僧)이라고 했다. 

자연히 양자간에는 특징이 있게 되었다. 일부 사판승(事判僧)에는 교리(敎理) 에 어두운 범승(凡僧)이 있었고, 이판승(理判僧)은 공부에만 치중함으로써 불교의 외형적 발전에는 그다지 큰 기여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양자는 상호 보완의 관계에 있었다. 폐사를 막음으로써 사찰(寺刹)의 명맥을 이은 것은 사판승(事判僧)의 공로이며, 부처님의 慧光(혜광)을 전하고 佛法을 이은 것은 이판승(理判僧)의 공로였다. 

그럼에도 해방 후 한 때 비구승 대처승의 다툼이 있었을 때 각기 이판승 (理判僧), 사판승(事判僧) 비유해 상호 비판했던 적이 있었다. 

사실 조선왕조 5백년 동안 사상 유례없는 억불정책에도 불구하고 불교가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이판(理判), 사판(事判)의 공(功)이 아닌가. 

그러나 이판(理判), 사판(事判)을 다 시도했지만 묘안이 없다면 그야말로 '이판사판(理判事判)', 자포자기가 될 수 밖에 없다. 

理 이치 리, 判 쪼갤 판, 事 일 사, 判 쪼갤 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