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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방(四方) 5리에 짙은 안개 속에 있어 방향을 알
수 없음과 같이, 사물 의 행방이나 사태의 추이를 알 길이 없음의 비유.
후한(後漢) 순제(順帝) 때, 학문이 뛰어난 장해(張楷)라는 선비가 있었다. 순제가 여러 번 등용하려 했지만 그는 병을 핑계대고 끝내 출사(出仕)치 않았다. 장해(張楷)는 춘추(春秋) '고문상서(古文尙書)'에 통달한 학자로서 평소
거느리고 있는 문하생만 해도 100명을 웃돌았다.
그러자 장해(張楷)를 좇아온 문하생과 학자들로 인해 그의 집은 저자를 이루다시피 붐볐다. 나중에는 화음산 남쪽 기슭에 장해(張楷)의 자(字)를 딴 공초(公超)라는 저잣거리까지 생겼다고 한다. 그런데, 장해(張楷)는 학문뿐만 아니라 도술(道術)에도 능하여 쉽사리 '오리무 (五里霧)'를 만들었다고 한다. 즉 방술(方術)로써 사방 5리에 안개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장해(張楷)는 성격이 도술을 좋아하여, 능히 5里 안의 안개를 지을 수가 있었 다. 그때에 관서(關西) 사람인 배우(裵優)가 또한 능히 3里의 안개를 일으킬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장해(張楷)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제자로 들어가 배우기를 바랬지만 장해(張楷)는 모습을 숨겨서 그를 보려고 하지 않았다. 張楷 性好道術 能作五里霧 時關書人裵優亦能爲三里霧
自以不如楷從學之 楷避不 肯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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