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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창성 없이 전 시대인의 것을 모방만 함을 경계.
위(魏)는 촉(蜀)과 오(吳)를 멸하여 천하를 통일한 후 국호를 진(晉)이라 고치고 낙양에 도읍을 정하였다. 낙양에 유중(庾仲)이라는 시인이 양도(揚都-南京)의 아름다운 풍경과 융성함을 노래한 시를 지었다. 양도는 오 나라의 도읍지였는데 이미 멸망한 후 이지만 양자강을 앞에 두고 뒤로는 우람한 산이 있어 풍광이 매우 아름답고 번화한 도시로서 강남의 중심지였다. 이러한 도시를 노래한 것으로 양도부(揚都賦)를 지었는데 그 표현이 특히 절묘하다는 평판을 들었다. 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이 시를 베끼어가는 바람에 낙양의 종이 값이
껑충 뛰었다. 그런데, 사태부(謝太傅)라는 고관이 있어 그 시를 보더니,“무얼
그런 따위 시를 가지고 떠드는가. 그런 시는 마치 지붕 밑에다 또 지붕을 만들어
놓은 것같이 같은 것을 반복한 것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라며 비웃었다.(世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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