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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산과 북두칠성. 사람들이 우러러 존경할 만한
뛰어난 인물.
1) 당(唐)나라 때 4대 시인(四大詩人)의 한 사람으로서 당송팔대가 (唐宋八大家) 중 굴지의 명문 장가로 꼽혔던 한유(韓愈 : 字는 退之)는 768년 지금의 하남성(河南省)에서 태어났다. 그는 9대 황제인 덕종(德宗 : 779-805) 때 25세의 나이로 진사(進士) 시험에
급제한 뒤 이부상서(吏部尙書)까지 되었으나 황제가 관여하는 불사(佛事)를
극간(極諫)하다가 조주자사(潮州刺史)로 좌천되었다.
이처럼 순탄치 못했던 그의 벼슬살이와는 달리 한유는 '한유(韓柳)'로 불렸을 정도로 절친한 벗인 유종원(柳宗元 : 字는 子厚)과 함께 고문부흥(古文復興) 운동을 제창하는 등 학문에 힘썼다. 그 결과 후학들로부터 존경의 대상이 되었는데, 그에 대해 당서(唐書) '한유전 (韓愈專)'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당나라가 흥성한 이래 한유는 육경(六經)을 가지고 여러 학저들의 스승이
되 었다. 한유가 죽은 뒤 그의 학문은 더욱 흥성했으며, 그래서 학자들은 한유를
'태산북두(泰山北斗)'를 우러러보듯 존경했다.
흔히 큰 것을 비유할 때‘태산만 하다’고 말하므로 무척 높은 산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 높이는 1,450m로 백두산 보다 낮다. 북두는 북두성(北斗星)을 이른다.
옛날 중국에서는 새로운 왕조가 탄생하거나 태평성대를 누렸을 때는 그 감사함을 천지신명께 고하는 풍습이 있었다. 제사는 태산의 정상에서 북두칠성을 향해 올렸다. 북두칠성을 뭇 별의 중심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또 지신을 올리는 제사는 양보산에서 지냈는데, 반드시 태산을 향해 올렸다. 지신(地神)이 깃든 곳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중요한 존재를 일러 태두라 했으며, 훗날 훌륭한 업적을 남긴 사람
에게 붙이는 존칭으로 그 뜻이 바뀌었다.
[출전] 唐書 韓愈傳贊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