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일본 방위청 자료실에서 ‘만밀대일기(滿密大日記)’에 실린 이 사진을 발견한 ‘더 채널’의 김광만(金光萬) 대표나 신운용 근현대사 팀장, 이 사진 사본을 전해 받은 유족이나 윤병석(尹炳奭) 인하대 명예교수의 첫 반응은 한마디로 ‘충격’ 그 자체였다. 윤 의사 처형 장면을 담은 사진이 처음 발견된 데다 그 모습이 너무나 끔찍하고 생생하기 때문이었다. 특히 유족들의 충격은 엄청났다. 동생인 윤남의(尹南儀·86)옹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마지막 순간을 사진으로 목격하니 참담하다”고 말문을 잇지 못했다. 윤옹은 이어 “총살한 뒤 윤 의사의 시신을 가네자와(金澤) 군인묘지 관리사무소 앞길에 묻어 13년 동안이나 방치했다는 것에 다시금 분노를 느낀다”고 덧붙였다. 조카인 윤주(尹洲)씨는 “이제야 이런 자료를 확인하다니, 그동안 우리는 무얼 했는지 부끄러울 따름”이라고 탄식했다.
‘만밀대일기’는 윤 의사 처형과 관련해 가장 다양하고 풍부한 자료들이 들어있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만밀대일기’는 윤 의사 처형 이듬해인 1933년(쇼와 8년)에 일본 육군성이 작성한 극비보고서로 총 40여쪽이다. 윤 의사 처형사진과 처형장 도면을 비롯해 윤 의사 형 집행에 관한 각종 명령안, 소송 기록, 헌병사령관의 사형집행보고서, 백범 김구 선생을 추적한 밀정들의 보고서 등 윤 의사 처형과 관련된 자료들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이런 자료들은 윤 의사 처형과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다. 윤 의사의 순국시간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도 이번 사료 발굴의 성과. 그동안엔 처형된 시간이 1932년12월19일 오전 11시40분인지 오전 7시40분인지를 놓고 학자들간에 이견이 있었다. 그러나 이 ‘만밀대일기’의 사협집행보고서에 오전 7시40분으로 기록돼 있다.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의 김달수(金達洙) 부회장은 “이번 자료를 통해 윤 의사의 정신을 다시금 되살리는 기회가 됐다”면서 “특히 일본이 역사교과서를 통해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억지를 부리고 있는 시점이어서 더욱 의미심장하다”고 말했다. 한편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는 윤 의사의 거사 장소인 상하이(上海) 훙커우(虹口) 공원의 매헌정에 이들 사진 사본을 전시할 계획이다. 이광표기자 [email protected] 황태훈기자 [email protected]
사람은 왜 사느냐 이상을 이루기 위하여 산다 보라 풀은 꽃을 피우고 나무는 열매를 맺는다 나도 이상의 꽃을 피우고 열매 맺기를 다짐하였다 우리 청년시대에는 부모의 사랑보다 형제의 사랑보다 처자의 사랑보다도 더 한층 강의(剛毅)한 사랑이 있는 것을 깨달았다 나라와 겨레에 바치는 뜨거운 사랑이다 나의 우로(雨露)와 나의 강산과 나의 부모를 버리고라도 그 강의한 사랑을 따르기로 결심하여 이 길을 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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