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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이문열 시대를 논하다] 

5. '삼국지'는 불멸의 역사 

"삼국지 주인공은 유비도 조조도 아닌 역사" 
 
민음사 박맹호 사장님의 권유로 삼국지를 붙들게 됐습니다. 등단 5년째인가 아주 젊고 바쁠 때인데, 나보고 삼국지를 번역해보라고 하더군요. 수호지는 황석영 선배한테, 금병매는 최인호 형한테 맡기겠다고 그러더라고…” 이문열씨는 이렇게 삼국지와 인연을 말했다. 

이에 대한 황석영씨의 언급은 이랬다. “다 잊어버렸군. 당신이 『삼국지』 『수호지』 다 넣어 주었어. 이후 누군가 면회와서 삼국지 번역이나 해보라고 충고를 하는거요. 그래서 시중에 나와 있는 판본들을 걷어다가 모조리 읽어봤어요.” 

시리즈 대담 마지막을 장식할 두 사람의 삼국지 얘기는 흥미진진하게 진행됐다. 

 
황석영(右).이문열 두 사람의 대담은 순식간에 꼬리를 감추는 열차처럼 짧게 느껴졌다. 두 사람은 "왜 진작 이런 자리를 갖지 못했나. 앞으로 자주 만나자"고 입을 모았다. [이혁재 사진전문기자]  

사회:말이 번역이지 토씨만 바꾼 것 아니냐는 시정의 야유도 있는데 왜 '삼국지'를 새로 썼습니까? 

황석영:저 양반은 젊어서 했는데 그게 수능 시험하고 맞아떨어져 엄청나게 팔렸다지. 출판계는 장사된다며 사방에서 달려들었고. 나는 사실 번역할 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감옥 탓이었지요. 집필권도 없이 7년 징역이 4년째가 되니까 못 견디겠더라고. 이 책 저 책 읽는데 그중에 '삼국지'도 있었어요. 

이문열:면회 때 나보고 '수호지'를 넣어달라고 했잖아요? '수호지'를 번역하려는지 알았지. 

황: 막상 '삼국지'를 읽다보니 번역들이 너무 거칠어. 오류도 많이 보이고. 1년 동안 두권 정도 했나? 시간이 아주 잘 갔어요. 감옥에서 나오자 때려치웠는데, 창비사에서 완성을 해달라고 계약금도 주고 했지. 나도 노후대책이 있어야 하잖아? 그러면 저 사람이 나한테 전화해서 "나는 그동안 많이 벌었으니, 이제 형님이 하쇼" 이럴 줄 알았는데…. 

이: 하하하. 

사회: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황:나, '삼국지' 얘기 대담서 하기 싫었는데, 남들이 우리더러 담합했다고 할 거 아냐. 그때 나는 아마 광주에 있었을 거요. 당시에는 '장길산'을 썼거나 마쳤거나일 땐데, 하여튼 1980년대란 온 사회 전체가 싸우는 때라서…. 

이: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는 '미야모도 무사시'를 비롯해 일본에서 인기 있는 역사물을 많이 쓴 작가인데, 어떤 인터뷰에서 자기가 일생 창작한 작품보다 재구성한 '삼국지'가 더 많이 팔렸다고 하더군요. 그 말이 충격적이었던 데다 또 박맹호 사장님이 설득합니다. 작가가 할 수 있는 부업 중에 '삼국지' 번역 만한 것도 없을 거라고. 게다가 그때 경향신문이 파격적인 대우로 연재를 제안했어요. 소설 연재료가 월 80만원일 때 2백만원을 줬으니까. 이렇게 3박자가 맞아서 시작했는데 과연 요시카와의 말대로 됐어요. 1백만부 넘게 판 책이 5종은 되는 내 창작소설 다 합친 것보다 '삼국지' 판매가 조금은 더 많을 거예요. 

사회: 최근에도 변동이 없습니까? 

이:내 '삼국지'와 다른 삼국지가 택일관계는 아닌 듯해요. 전에도 새 번역이 나올 때마다 덕을 보았는데, 아마도 내 책을 읽은 사람이 다른 사람 것을 볼 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어 그런 모양입디다. 황선배 덕분에 올해는 일찌감치 70만부를 넘어섰어요. 

황:그거 잘 됐네. 이형 물건은 오래된 상품이라 홈쇼핑 할인판매에 힘을 기울이더군. 두 달 동안 내 책도 한 50만부나 나갔으니 시장을 나눠먹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키워놓은 셈이지. 최근 잠시 멈칫하는 느낌인데 방학이 되면 달라질 것으로 기대해요. 

 
사회:두 분이 대본으로 삼은 책이 서로 다르지요? 

이:꼭 그렇지는 않아요. 둘 다 모종강(毛宗崗)본인 것 같은데, 나는 모(毛)본을 뼈대로 삼았지만 정사(正史)를 보강하고 다른 저술들을 참조해 재구성을 시도했지요. 그래서 1~2권은 구조부터 다소 다르게 가고, 3~9권은 평(評)과 해설을 빼면 정본과 거의 같습니다. 다시 10권에서는 심한 축약이 있고. 

황:사실은 처음 두권은 대만 삼민서국(三民書局) 판이었고 한국판의 원본은 거의 이것입니다. 나중에 저는 뒤늦게 손을 댄 덕으로 상해 강소고적(江蘇古籍)판의 수상삼국연의(像三國演義)로 원본을 바꾸었는데 위의 삼민서국 판의 모종강본 오류를 바로잡은 판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형은 평역을 했고. 나는 정본 '삼국지'가 하나 있어야겠다는 생각에서 번역을 했어요. 주위 얘기로는 우리가 어렸을 때 읽은 '박태원 삼국지'만한 것이 없다는 거야. 그가 월북하는 바람에 출판사 사장 이름으로, 최영해로 역자가 둔갑하기는 했지만. 이른바 그 유명한 '정음사 판'입니다. 

이:나중에 '월탄 삼국지'와 '구용 삼국지'가 가세했지만, 기성세대에게는 '박태원 삼국지'와 요시카와 에이지 번역판이 가장 많이 읽혔죠. 

황:그렇지. 그 둘이 국내 '삼국지'의 상징이지. '박태원 삼국지'는 우리 입맛에 딱 맞는 문장과 시를 읽는 맛이 기막혀요. 내 책의 경우 시 번역은 자신이 없어서 절반 정도를 하고는 한시 전공자인 임형택 교수에게 보여줬더니 새빨갛게 고쳐온 거야. 이 참에 시는 아주 그 친구에게 맡겨버렸고, 번역을 끝내고 나서 여러분에게 감수를 받았는데 교열을 무려 7번이나 봤어요. 나중에는 아주 신물이 나고, 정말 귀찮더라고. 선금 돌려주고 때려치우고 싶었어. 

이:나는 4년에 걸쳐 신문에 연재했으니까 대개는 오류를 그때그때 고칠 수 있었어요. 

사회: '삼국지'의 정통성 논란을 어떻게 보십니까? 

이:조조 정통성을 일본 관점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진수(陳壽)의 '삼국지'는 물론이고, 중국의 정사(正史)는 거의 전부가 조조에게 정통성을 부여해요. 나관중(羅貫中)을 비롯한 원말 명초의 연의(演義) 작가들과, 송대에 대의명분을 중시한 주자학자들을 빼고는 유비에게 정통성을 부여한 적이 별로 없어요. 

황:물론 사서를 썼던 진수가 조조의 위를 이어받은 진에 봉사한 사관이었으니 당연하지요. 나관중이 소설로 쓸 때에는 원말 명초이니 몽골을 물리치고 명나라를 개국하려는 열망이 담겼고, 모종강이 쓸 때도 이민족인 청나라가 지배하던 시기 아닙니까? 한족 정통성을 향한 강한 민중적 열망이 담겨 있었다고 봐야죠. 그러니 소설에 유비 위주의 촉한 정통론이 스며든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 같아요. 그런 의식은 현재도 마찬가지여서 세계 각처의 화교 동네에서 관우와 세 형제의 사당을 심심찮게 볼 수 있어요. 

사회:어느 인물 위주로 '삼국지'를 쓰셨습니까? 

황:정통성이니 주인공이니 하는 말이 싫은 것은 조조든 누구든 그들 나름대로 특성이 있기 때문이에요. '삼국지'의 주인공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없다고 말합니다. 굳이 주인공을 따진다면 '삼국지'의 주인공은 역사일 뿐입니다. 거기 나오는 인물 중에 과연 누가 성공했습니까. 도도한 역사 앞에서 다 실패했죠. 젊었을 때는 '삼국지'를 영웅 중심으로 보는데, 나이 들어서는 전체의 흐름을 보게 되지요. 

이:대만대학에서 '삼국지'를 전공하는 우훙이(吳弘一) 교수를 누가 소개해줘서 만났어요. '삼국지' 소설을 내 마음대로 쓰고 싶다고 했더니 그 사람 말이 두 가지만은 건드리지 말라고 합디다. 먼저 촉한 정통론을 건드리지 말라더군요. 적어도 연의에서는. 

황:이형이 뭐 건드린 거 없잖아? 

이:또 하나는 관우를 건드리지 말라는 거였는데, 나도 그 두 가지를 지키려고 애썼어요. 조조를 조금 올려놓았으니까 상대적으로 촉한 정통성이 약화된 듯 보일 뿐이지. 

황:유비도 흉측하지. 조조와 밥먹다가 천둥친다고 젓가락 떨어지는 장면, 백만 대군을 헤치고 조자룡이 품고 온 아두를 내던지는 장면 등 음흉한 사례가 한둘이 아니지요. 반면 조조는 담백해요. 나는 그 장면이 좋더군. 죽기 전에 후궁들 모아놓고 선물로 향 하나씩 나눠주면서, 너는 바느질을 잘하니까 바느질해서 먹고살아라 따위로 당부하는 장면 말이야. 

사회: 민중사관으로 기우는 황선생님이 유비 정통성에 안주하고, 보수사관으로 기울 것 같은 이선생님이 조조 정통성을 내세운 것이 다소 의외라는 생각인데요. 

이:당대의 주도권을 누가 잡고 있었느냐, 그것을 정통의 기준으로 보면 될 텐데…. 또 조조가 반드시 민중의 적은 아니지요. 유비도 황실의 종친이라지만 사실은 장돌뱅이고. 

황:그렇게 보면 유비 측이 조조나 손권에 비해 제일 아래 계층이지요. 몰락 선비나 저자의 무뢰배 출신들이었으니까. 민중사관이니 뭐니 전혀 그런 생각이 없었어요. 그냥 원본의 정신을 살피다보니 우리 요즘 입맛에 맞는다고 생각했을 뿐이지. 글맛이 나게 하면서 시나 주석이나 원본에 충실했지요.

 
사회:'삼국지' 작가에게도 특별히 애착이 가는 장면 같은 것이 있습니까? 

이:두 친구가 밭을 가는 도중 금덩어리가 나왔는데, 하나는 그것을 만져보고 던지고 다른 하나는 만져보지도 않지요. 만지지 않은 친구가 만져본 친구를 경멸하는 장면이 있지요? 

황:또 있어. 글을 읽는데 밖에 행차가 요란해요. 한 친구가 일어서서 그 행차를 내다보니까 그대로 글을 읽던 다른 친구가 너는 명리를 추구할 놈이라면서 절교하지요. 

▶ 책이 빽빽하게 꽂힌 서가는 황석영(左).이문열 두 사람에게 더할 수 없이 친숙한 곳이다. 두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후배 문인들이 대견하다고 말한다.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사회:관녕과 화흠 이야기 같은데, 화흠은 나중에 조조한테 벼슬해서 제위 선양-실은 찬탈-에 앞장서지요. 

이:젊어서 읽을 때는 그 대목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번역할 때는 이미 지겨운 일이 돼버려서 감동이고 인상이고를 따질 겨를이 없었지만. 

황: 제갈량이 출사표 내는 장면도 근사해. 후주 유선이 크게 모자라는데도 유비 생전의 약속 때문에 그를 지키지요. 

이:어떤 이는 그 '탁고(託孤)'를 두고 유비가 공명한테 몹쓸 짓을 했다고 해요. 

황:출사표에 보면 그런 인간적인 고뇌가 보이지요. 오장원에서 죽을 때도 아주 비장하고. 

사회:'삼국지'에서 가장 근사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황:시대마다 바뀌는데 요즈음 나는 주변 인물에 흥미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강유 같은 사람이지요. 제갈량에 반해 조조한테서 넘어온 사람인데, 촉이 망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끝까지 버티다가 나중에 자결하는 비운의 인물이지. 물론 제갈량이 으뜸이지만. 

이:소설적으로 잘 창조되기는 조자룡이 아닌가 싶어요. 정사에는 아주 짧게 나와 허구로 창조된 인간이란 폄하도 있지만, 연의 '삼국지' 전편에 걸쳐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가장 빠짐없이 갖춘 인간이 아닌가 해요. 

황:촉의 오호 장군 중에 막내지요? 조자룡은 제갈량 사람이야. 장비는 경계할 인물이 아니었으나 관우는 달랐지요. 관우는 견제하면서도 제갈량이 가장 믿는 사람이 조자룡이었어. 

사회:두 분의 오류와 오역을 자세하게 지적한 중국 조선족 평론가의 책과 글이 나왔는데 혹시 읽어보셨습니까? 

이:그의 지적이 다 옳은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나는 굉장히 고맙게 봤어요. 번역을 해보면 몰라서 틀린 것도 있고, 틀린 줄도 모르게 틀린 것도 있습니다. 그가 오류라고 지목한 9백여곳 중에 32개는 온당했고, 그래서 즉시 그대로 고쳤습니다. 곧 그에게 감사의 말과 함께 교정판을 한질 보내줄 작정입니다. 

황:오류가 있다면 먼저 자세히 살펴보고 고쳐야지. 창비 편집부와 협의해서 즉시 바로잡겠습니다. 

사회:'삼국지'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황:약속과 의리를 지키고, 되든 안 되든 최선을 다해서 살라는 것 아니겠어요? '삼국지'를 보면 이건 오늘의 누구 같고 저건 누구 같은데, 그렇다고 '삼국지'를 무슨 서바이벌 게임 교본처럼 여기는 것은 잘못이야. '삼국지'는 동아시아 3국의 공동 재산이 되어야 해요. 

이:교훈은 역사적 관점에서 찾아야 하는데. 역사가 반복된다면 '삼국지'는 좋은 교본이 될 테지만, 어떤 논의들은 역사적 허무주의에 빠져 있어요. 

황:'삼국지'에 허무주의 요소가 분명히 있습니다. 세월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최선을 다하라는 권고 자체가 허무한 것이지요. 그러니까 그런 역사의 덧없음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더욱 최선을 다하라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사회=정운영 논설위원 
 
중앙일보 2003.10.29 18:29 입력 / 2003.10.30 07:37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