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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오행으로 살펴본 이창호와 그 바둑 
 
프레시안의 김태규 명리학에서 퍼옴. 

작년 말부터 금년 들어 세계 바둑의 최고수인 이창호 구단(九段)이 연패의 양상을 보이자 슬럼프 설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가 다시 두 개의 대회에서 우승을 거두자 슬럼프 설은 자취를 감췄다. 
 
과연 이창호는 슬럼프일까 아니면 잠시 그랬던 것일까? 
 
이창호는 작년 2004년 갑신(甲申)년 편인(偏印)의 해에 가장 큰 슬럼프를 만났었다는 것이 필자의 대답이다. 그래서 오늘은 이창호의 바둑과 그 장래 전망에 대해 알아보는 글을 마련했다. 
 
물론 필자는 바둑 실력이 인터넷 바둑에서 3단에 불과한 만큼 감히 바둑의 깊은 세계에 대해 논할 실력은 없고, 단지 음양오행의 측면에서 살펴본다는 얘기이다. 
 
필자가 이 칼럼을 통해 늘 얘기해왔듯이 자신의 업(業)은 언제나 자신의 일간(日干)과 같은 해에 시작하는 것이 장구(長久)한 발전을 기대할 수 있는 법인데 이창호 역시 태어난 날이 병자(丙子)일이고 1986년 병인(丙寅)년에 프로바둑에 입단했다. 그러니 좋은 출발이다. 
 
(잠깐 밝힐 것은 필자가 ‘이창호’라고 쓰고 있는데 이는 그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여겨서 그런 것이니 혹 오해 없기를.) 
 
여기서 이창호의 사주와 대운을 한 번 보기로 하자. 
 
  연 을묘(乙卯) 
  월 계미(癸未) 
  일 병자(丙子) 
  시 -- 
 
생시를 몰라 약간 답답한 감은 있으나, 그간의 행적이 소상하니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월간에 계수(癸水)가 있으니 단정하고 차분하며, 연간에 을목(乙木)이 있으니 귀태가 있고 학구적임을 알 수 있다. 또 늦여름 미(未)월에 났으니 상관(傷官)격이라 비상한 재주를 속에 품었다. 외유내강(外柔內剛)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명리적인 측면에서 이창호는 바둑 기사로서 대단히 이례적인 사람이다. 대개의 프로 기사들은 태어난 날, 즉 일간(日干)이 금(金)이거나 수(水), 그리고 목(木)이다. 일간이 화(火)인 사람은 무척 드물다. 
 
예를 들면, 이창호의 스승인 조훈현 구단(九段)은 경금(庚金)이고, 유창혁 구단은 계수(癸水)이며, 최근 중국의 신예 강자들 중에도 일간이 물인 사람이 많다. 그 대표적인 예가 얼마 전 응창기 배에서 우승한 창하오를 들 수 있다. 
 
아무튼 바둑을 잘 두는 이는 어김없이 사주에 수기(水氣)와 목기(木氣)가 강한 것을 특징으로 한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바둑의 본질과 관련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람의 일생을 볼 때, 언제나 그 사람의 일간(日干)과 같은 해를 기점으로 10년씩 끊어서 살펴보는 방법과 어떤 기념할 만한 일이 있었던 해를 기점으로 해서 6년 단위로 살펴보는 방법이 대단히 효과적이다. 
 
이창호의 경우, 일간이 병화(丙火)이고 1986년 병인(丙寅)년에 프로바둑의 세계로 들어왔기에 앞서의 두 가지 방법을 공히 적용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중요한 사업은 자신의 일간(日干)과 같은 해에 시작하라고 하는지, 필자의 글을 자세히 읽지 않은 분도 많을 터이므로 다시 한 번 밝혀두고자 한다. 일간과 같은 해에 사업을 시작한다는 것은 봄에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면 여름에 자라서 가을에 가면 수확을 걷는 것이 자연의 순리에 따른 농사법이다. 
 
이창호는 일간이 병화(丙火)인데, 1986년 병인(丙寅)년에 입단한 것은 씨앗을 뿌린 셈이다. 1987년 정묘년은 미처 뿌리지 못한 곡물까지 파종한 것이니 아직은 성적이 나올 때가 아니다. 
 
1988년 무진(戊辰)년과 1989년 기사(己巳)년에는 식상(食傷)의 운이므로 그 싹이 한창 자라는 기간인데, 그는 1988년에 KBS 바둑왕전에서 최초로 타이틀을 획득했다. 
 
1990년1991년, 경오(庚午), 신미(辛未)년은 재운(財運)이 되어 수확을 거둬들이기 시작한다. ‘90년에 그는 국수전에서 타이틀을 따면서 그 해 승률 87 %라는 경이적인 성적을 낸다. 
 
이어서 '91년 신미(辛未)년에는 명인과 최고위, 대왕, 왕위, 박카스 등등 타이틀을 독식하기 시작했으니 풍성한 수확을 올렸다. 
 
그 다음 기간은 발전하는 기간이 아니라 획득한 자리와 위치를 고수하기 위해 힘들게 앞길을 헤쳐 나가야 하는 시기가 4년간 이어지게 된다. 달리 말하면 굳히기를 하는 기간인 셈이다. 
 
따라서 1992년부터 1995년까지 그는 대단한 성적을 내고 있었지만, 그것은 주로 국내 대회에서였다. 
 
그런 그가 1996년 또 다시 병화(丙火)가 오는 해인 병자(丙子)년부터는 세계 바둑 대회에서 발군의 실력을 내기 시작했으니 새로운 출발인 셈이다. 이른바 ‘뉴 라운드’인 것이다. 
 
‘96년 병자(丙子)년, 후지쯔배 우승이 이창호에게는 새로운 자극제가 된 것이다. 이리하여 그는 다시 대수확을 거두는 2001년 신사(辛巳)년에 가서 응창기 배를 거머쥠으로써 명실 공히 세계 일인자로 등극하게 된다. 
 
그 뒤 몇 년간 이창호는 연이어 세계 대회를 제패해 나갔다가 드디어 2004년 갑신(甲申)년을 맞이하여 슬럼프에 빠져들게 되는데 그 원인은 갑목(甲木) 편인(偏印)의 해가 되면 누구나 그렇듯이 의욕이 떨어지고 도전심이 약화되며 사물을 관조하기 시작한다. 일종의 철학적이고 내성적인 분위기가 주조(主調)를 이루는 것이다. 
 
작년 한 해 이창호는 바둑을 둔 것이 아니라, 바둑에 관해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어가는 철학적인 성찰의 시기였고 그것이 외면적으로는 슬럼프로 나타난 것이다. 
 
승률도 한참 떨어져서 작년의 경우 49승 12패로 72%였는데, 물론 좋은 성적이긴 하지만 한창 승률이 좋을 때는 80% 이상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 역시 슬럼프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70%나 80 %나 다 높은 승률이니 무슨 차이냐 할 수 있지만, 가령 2000년 그는 64승 12패로 84% 의 승률에서 작년 49승 12패에 72%이니 차이가 큰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패는 같은 12패이지만, 승수에서 무려 15승 차이가 지니 말이다. 
 
최근 이창호 바둑의 스타일이 호전적이고 적극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말을 하는데, 운세로 봐도 당연하다. 내년 2006년은 병술(丙戌)년이 되는데, 지지의 술(戌)토가 호전성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이창호는 프로 바둑으로 20년을 지냈으며, 내년부터 시작되는 10년은 이창호로서 가장 전성기의 바둑을 보여주는 운세가 될 것이다. 
 
병인에서 시작했을 때 병인(丙寅)의 지지에 있는 인목(寅木)은 배우면서 큰다는 뜻이고, 1996년 병자(丙子)의 지지인 자수(子水)는 내면적으로 힘들면서도 극복해 나간다는 뜻이지만, 병술(丙戌)의 술(戌)은 자신만의 기술을 이제 마음껏 펼친다는 뜻이기에 내년부터 보여주는 이창호의 바둑은 대단히 화려한 고난도의 기술을 선보일 것이 틀림없다. 
 
장차 이창호의 바둑 인생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간단히 살펴보겠다. 
 
현재 이창호의 나이 31살이다. 최근에 와서 바둑과 같이 집중력을 요하는 게임은 40세가 넘으면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러니 내년부터 시작되는 3번째 라운드는 이창호 바둑의 절정이 될 것이 분명하다. 올 한 해 이창호는 바둑에 관한 새로운 통찰의 경지에 들어서게 되는데 이는 올해가 을유(乙酉)년 정인(正印)의 해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새로운 기(氣)가 모이는 축기(蓄氣)과정인 것이다. 
 
그리고 내년부터 시작될 새로운 10년 장정을 거치면서 더 높은 경지로 들어설 것이다. 물론 오는 2012년부터 2014년까지의 3년간은 이창호 바둑 인생을 통털어 가장 험난한 시련기가 될 것으로 보이지만, 그럼에도 그의 발길은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리하여 오는 2016년 병신(丙申)년부터 몇 년간은 그가 프로 바둑 인생을 출발한 지 30년을 넘기면서 어쩌면 1950년대 초반 기성(棋聖)이라 불리는 오청원이 만들어낸 현대 바둑에서 진일보한, 전혀 새로운 바둑의 패러다임을 만들어내는 위업을 달성해낼 수도 있다고 여겨진다. 
 
천재가 한 길을 30년 이상 닦으면 전혀 새로운 길이 만들어지는 법이기에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바둑이 아직까지는 동양의 신비한 게임 정도로만 여겨지지만, 바둑이 지닌 보편성으로 볼 때 세계적인 게임이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바둑은 지난 1995년 을해(乙亥)년부터 세계화의 길로 들어섰으므로 30년이 지난 2025년이 되면 진정한 의미에서 전 세계인이 즐기고 관심을 가지는 두뇌 스포츠로 자리 잡을 것이다. (200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