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역사상 최초의 통일국가.
주(周)나라 제후의 하나로 목공(穆公)시대에는 춘추5패 중 하나였으며 전국시대에도 전국7웅으로 강성하였다. 초기에는 주왕실 서쪽 변두리에 살던 유목 씨족이었으리라 여겨지고 있는데 기원전 771년경 주 평왕(平王)으로부터 기산(岐山) 서쪽의 땅을 하사받아 제후가 되었으며, 그 후 점차 세력을 확장하였다. 춘추시대에는 목공시대를 제외하고는 뚜렷한 세력을 확보하지는 못하였으나 전국시대에 이르러 기원전 4세기경 효공(孝公)이 상앙(商앙)을 채용하여 내정 개혁을 단행하고 위수분지의 중앙지인 함양(咸陽)에 도읍하였으며, 중앙집권적 전제군주체제를 확립한 후에는 그 세력이 급속히 증대하여 마침내는 중원에 대한 침략전을 개시하게 되었다. 그 후 혜문왕(惠文王)
때부터는 스스로 왕이라 칭하고 파(巴) 촉(蜀)에 그 세력을 뻗쳐 사천(泗川)
분지를 점유하였으며, 서쪽의 대국으로서 나머지 6개국과 맞서게 되었다.
그 후 소양왕(昭襄王)에 이르러 이웃 여러 나라를 평정하고 기원전 256년에는 명맥만을 유지하던 주 왕실을 멸망시켰으며, 드디어 기원전 221년 진왕 정(政) 이 중국의 통일을 이루었다. 진왕 정(政)은 통일을 이룩한 뒤 스스로 시황제(始皇帝)라 일컬었다. 시황제(始皇帝)에 의한 중국통일은 중국 최초의 통일이며 또한 봉건제를 폐지 하고 최초로 군현제(郡縣制)를 전국에 실시하여 관료제에 의한 중앙집권적 전제군주체제를 형성하였으며 이 제도는 그 후 중국 국가 지배체제의 근간으로 확립되었다. 또한 나라마다 달랐던 화폐, 도량형, 문자의 서체를 통일하고 반란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무기를 몰수했다. 대외적으로는 북쪽 흉노족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쌓고 장군 몽념(蒙恬)으로 하여금 토벌하게 했다. 그러나 분서갱유(焚書坑儒)로 많은 유학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았으며, 만리장성 이나 아방궁(阿房宮), 능묘(陵墓) 건설 등으로 인해 백성의 원성을 사게 되어 각지의 민중반란이 일어나 겨우 15년만에 그 제국은 와해되어 버렸다. 그러나 진(秦)제국은 중국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그것은 처음으로 중국에 통일국가를 완성했다는 점이다. 현재 차이나(China)라는 영어 이름도 진(Chin)에서 기원한 것이다. |
| 고성낙일
孤城落日
굴신제천하 屈臣制 극천하이굴신 克天 금성탕지 金城湯池 기화가거 奇貨可居 낭중지추 囊中之錐 누란지위 累卵之危 당돌서시 唐突西施 마 생 각 馬 生 角 모 인 慕藺 방약무인 傍若無人 |
백
안 시 白 眼 視
병사지야 兵死之也 부 마 駙馬 부족치치하간 不足 분서갱유 焚書坑儒 불로장생 不老長生 선즉제인 先則制人 식마불음 주상인 알 운 곡 알 雲 曲 원입골수 怨入骨髓 이목지신 移木之信 |
일거양득
一擧兩得
일자천금 一字千金 조명시리 朝名市利 지록위마 指鹿爲馬 징갱취제 懲羹吹제 천고마비 天高馬肥 태산불사토양 泰山 투편단류 投鞭斷流 투 향 偸香 풍성학려 風聲鶴려 화씨지벽 和氏之璧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