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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nysus (Roman name Bacchus), Greek Olympian god of vine, wine and mystic ecstasy. Orgies in favor of Bacchus are bacchanals. According to classical mythology, the god’s favorite island was Andros, where rivers ran with wine instead of water. The Greek city of Amphissa, or Salona, was also a center for the cult of Dionysus. 

Here a group of exhausted female bacchantes are waking up after a night of bacchic revels, and being tended by local wo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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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chus - 로마 신화에 나오는, 술의 신. [그리스 신화의 디오니소스에 해당함.] 

Dionysus - 디오니소스는 박코스("Ba/kxoj )라고도 불리며, 로마에서는 이탈리아의 옛 신 <리베르 파테르Liber Pater> 와 동일시되었다. 디오니소스는 그리스 로마 시대에 주로 포도와 포도주, 그리고 신비적 광기의 신이었다. 그의 전설은 그리스뿐만 아니라 이웃 나라들에서 차용해 온 다양한 이야기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매우 복잡하다. 가령 그의 제사는 소아시아에서 유래한 유사한 제사들을 흡수했고, 이러한 부분적 동일시로 인해 다른 여러 가지 일화들도 그의 이야기의 나머지 부분들과 어느 정도 결합되었다.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와 세멜레의 아들로, 그의 어머니는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의 딸이다. 그러므로 디오니소스는 헤르메스, 아폴론, 아르테미스 등과 같이 두 번째 세대의 신들 즉 올림포스 신들에 속한다. 제우스의 사랑을 받은 세멜레는 제우스에게 위엄을 갖춘 본래의 모습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 제우스는 그녀를 기쁘게 하려고 요구를 들어주었지만, 세멜레는 제우스를 에워싼 강한 섬광에 그만 타죽고 말았 다. 제우스는 그녀 태중에 있던 아이를 잽싸게 꺼냈는데, 아이는 채 6개월도 되지 않았었다. 그는 곧바로 자신의 허벅지에 아이를 넣고 꿰맸으며, 3개월 후 온전하고 건강한 아이를 다시 꺼냈다. 이 아이가 바로 어린 디오니소스로, <두 번 태어난> 신으로 일컬어진다. 제우스는 아이를 헤르메스에게 맡겼고, 헤르메스는 오르코메노스 왕 아타마스와 그의 두 번째 아내인 이노에게 아이를 양육하게 했다. 헤라는 질투한 나머지 남편이 외도로 낳은 아이를 없애려 했으므로, 헤르메스는 여신의 눈을 피할 수 있도록 아이를 여자로 변장하여 키우라고 명했다. 하지만 헤라는 이에 속지 않았고, 디오니소스의 유모인 이노와 아타마스를 실성하게 만들었다(☞이노, ☞팔라이몬, ☞아타마스). 그래서 제우스는 디오니소스를 그리스에서 멀리 떨어진 니사라는 고장으로 옮겨(어떤 이들은 그곳이 아시아에 있는 나라라고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에티오피아 아니면 아프리카라고도 한다) 그곳의 님프들에게 아이를 양육하게 했고, 이번에는 헤라의 눈을 피하기 위해 디오니소스를 새끼 산양으로 변신시켰다. 이 이야기는 디오니소스에게 붙여진 <새끼 산양> 이라는 제의적 수식어를 설명해 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디오니소스[ <니사 산에서 자란 제우스> 라는 뜻]라는 이름의 어원이 니사 산에 유래한 것임을 보여 주기도 한다. 디오니소스를 보살펴 준 대가로 님프들은 후에 하늘로 올라가 히아데스 별자리가 되었다. 

성인이 된 디오니소스는 포도와 그 사용법을 발견했다. 하지만 헤라는 그를 실성하게 만들었고, 미치광이가 된 디오니소스는 이집트와 시리아를 떠돌아다녔다. 아시아 연안을 거슬러 올라가 프리기아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키벨레 여신의 환대를 받았다. 키벨레는 디오니소스를 정상으로 돌아오게 하고 자신의 제의에 입문시켰다. 광기에서 벗어난 디오니소스는 트라케로 갔는데, 스트리몬 강 유역을 다스리던 리쿠르고스 왕에게 푸대접을 받았다. 리쿠르고스 왕은 디오니소스를 감옥에 가두려 했지만 성공할 수 없었다. 테티스가 디오니소스를 구해 주었고 네레이스들이 바다 속에 피난처를 제공해 주었던 것이다. 그러자 리쿠르고스는 디오니소스를 따르는 무리인 박케들[박카이]을 잡아들였다. 하지만 박케들은 기적적으로 자유의 몸이 되었고 반대로 리쿠르고스 자신이 미치게 되었다. 그가 디오니소스에게 봉헌된 포도나무를 벤다고 생각하며 자른 것은 아들의 다리였다. 제정신으로 돌아온 리쿠르고스는 자신의 나라가 기근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탁에 물어보니 리쿠르고스가 죽어야만 디오니소스의 분노가 풀릴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백성들은 그의 사지를 네 마리 말에 묶어 찢어 죽였다. 

디오니소스는 트라케를 떠나 인도로 가서, 반은 군사적이고 반은 신적인 원정을 행했다. 그는 한편으로는 무력으로(그에게는 군대가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마법과 신비한 힘으로 인도를 정복했던 것이다. 그가 어디든지 끌고 다니는 승리의 행렬은 바로 이 정복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야기된다. 이 행렬에서 그는 표범이 끌고 포도넝쿨과 담쟁이덩굴로 장식된 수레를 타며, 여자 무녀들, 사티로스들, 그리고 람프사코스의 신인 프리아포스를 위시한 군소 신들이 뒤를 따른다. 

디오니소스는 그리스를 떠나 어머니의 나라인 보이오티아에 다다르게 되었다. 카드모스의 계승자 펜테우스가 다스리던 테바이에, 디오니소스는 자신을 기리는 축제인 박카날리아를 도입했으며, 이 축제에서 모든 사람들, 특히 여자들은 황홀경에 빠져 비명을 지르면서 전원을 돌아다녔다. 왕은 이처럼 위험한 예식이 도입되는 데에 반대했고, 그 때문에 벌을 받았다. 세멜레의 자매 인 그의 어머니 아가우에 역시 벌을 받았으니, 아가우에는 키타이론 산에서 자기 아들을 찢어 죽였을 것이다(아가우에, 펜테우스). 디오니소스는 아르고스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위력을 보였다. 그는 프로이토스 왕의 딸들을 미치게 만들어(멜람푸스, 프로이티데스), 그녀들은 그 나라의 다른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마치 자신들이 소이기나 한 것처럼 소 울음소리를 내면서 전원을 배회했고, 심지어는 미쳐서 자신들의 갓난아기들을 먹어치우기도 했다. 

그 후 디오니소스는 낙소스로 가려고, 지나가던 티레노이 해적들의 배에 태워 달라고 했다. 그러나 해적들은 부탁을 들어주는 척하면서 그를 노예로 팔아 버리려고 아시아로 뱃머리를 향했다. 이를 알아차린 디오니소스는 노를 뱀으로 변하게 하고 송악으로 배를 뒤덮었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피리 소리가 배 주변을 맴돌며 메아리치게 했다. 그는 포도넝쿨로 배를 꼼짝 못하게 만들었고, 마침내 해적들은 미쳐서 스스로 바다에 뛰어들어 돌고래가 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돌고래들이 왜 사람들과 친숙한가를 설명해 주는 것으로, 그들이 난파당한 사람들을 구하려 하는 것은 죄를 뉘우치는 해적들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때부터 디오니소스의 위력은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그는 지상에서 자신의 역할을 끝내고 도처에 자신을 숭배하는 예식을 창설한 뒤 하늘로 올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디오니소스는 우선 하계에 내려가서 어머니 세멜레의 영혼을 찾아 되살리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 그는 하계로 통하는 지름길로 알려진 레르네의 심연을 통과했다. 하지만 길을 몰랐던 디오니소스는 프로심노스(혹은 폴림노스)라 불리는 이에게 물어보아야만 했고, 프로심노스는 그가 돌아오는 길에 보상을 해줄 것을 요구했다. 

프로심노스는 디오니소스가 돌아오기 전에 죽었으므로, 그 보상은 디오니소스가 하늘로 다시 돌아가서야 해줄 수 있었지만, 디오니소스는 약속을 지키려고 적당한 형태의 막대기를 그의 무덤에 꽂아 주었다(폴림노스). 하계에서 디오니소스가 하데스 신에게 자신의 어머니를 풀어 달라고 하자, 하데스는 그의 요구를 들어주는 대신 디오니소스가 아끼는 것을 달라고 요구했다. 그래서 디오니소스는 자기가 좋아하는 식물들 중 도금양을 그에게 주었으며, 디오니소스 비의에 입문하는 자들이 도금양으로 만든 관을 쓰는 관례는 바로 여기서 생긴 것이라고 한다. 

디오니소스가 낙소스에서 아리아드네를 데려간 것은 이렇게 하늘에 올라간 다음의 일이다(아리아드네, 테세우스). 

디오니소스는 또한 거인족인 티탄들과 올림포스 신들의 싸움에 참가하여, 자신의 상징이라 할 지팡이(송악으로 장식된 길다란 장대)로 에우리토스를 때려 죽였다. 

포도주와 영감의 신 디오니소스는 떠들썩한 행렬로 숭배되었으며, 이 행렬에서 가면을 쓴 인물들은 대지와 풍요의 정령들의 모습을 나타냈다. 이와 같은 행렬들은 가장 일반적으로 극장 상연, 희극, 비극, 사티로스 극[수염과 꼬리, 말발굽을 가진 사티로스들이 합창단으로 나오는 우스운 내용의 극. B.C. 5~4세기경 그리스의 비극은 3부작 비극에 사티로스 극 1편이 덧붙여진 4부작 형식을 취했다] 등에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사티로스 극은 가장 오래 이 흔적을 간직하고 있었다. 로마 시대와 기원전 2세기부터, 방탕과 광란의 성격을 지닌 디오니소스 숭배는 이탈리아 남부와 중부의 산악 지대에 사는 덜 문명화된 사람들 사이에 빠르게 퍼져 나갔다. 기원전 186년 로마 원로원은 박카날리아 축제를 금지했지만, 신비주의적 종파들은 디오니소스의 전통을 지켜 나 갔다. 카이사르가 박코스 제례를 다시 허용했다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디오니소스는 제정 시대의 종교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