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독일 출신 에카르트 크라우춘 감독에게 사령탑을 맡긴 중국은 지난해 아시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결승에서 한국에 패한 상처를 거울삼아 뼈를 깎는 노력 끝에 대회 B조 조별리그에서 3전 전승을 거두며 맨 먼저 16강 티켓을 따냈다. 

비교적 수월한 조 편성이었다는 지적이기는 하지만 유럽의 신흥 강호 터키와 우크라이나를 모두 물리쳤다는 성과를 무시할 수는 없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차출 규정(대회 본선 개막전 14일 전)보다 4배나 빠른 두달 전부터 선수들을 소집했다는 점, 특히 대회 장소인 네덜란드 인근의 독일에서 약 한달간 전지훈련을 실시하며 완벽하게 적응했다는 점이 그 원동력이다. 

프로리그보다는 대표팀을 우선하는 행정과 미래를 내다본 막대한 투자가 결실을 이룬 셈이다. 

특히 자국에서 열리는 2008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할 세대인 이번 청소년대표팀은 장기적인 계획에 따라 체계적으로 육성되고 있어 한국과 일본이 양분하고 있는 동아시아 축구의 판도에도 지각변동을 일으킬 전망이다. 

현 중국 청소년대표팀 선수들은 대부분 180㎝를 훌쩍 넘는 큰 체격에 기본기와 패스워크도 제대로 갖췄다는 평가다. 

브라질의 벽을 넘지 못하고 아쉽게 조별리그 탈락의 고배를 들이킨 한국의 속을 더욱 쓰리게 할 소식은 나머지 아시아 3개국이 모두 16강에 진출했다는 것이다. 

시리아는 이탈리아를 2-1로 잡는 이변을 연출하며 1승1무1패로 E조 2위를 차지했고, 일본은 2무1패(승점 2)에 그쳤지만 골득실과 다득점으로 A조 2위까지 올라 극적으로 16강 티켓을 거머쥐는 짜릿한 기쁨을 맛봤다. 

그 중에서도 '영원한 라이벌' 일본이 개최국 네덜란드에 1-2로 패한 뒤 베냉, 호주 등 비교적 해볼만한 팀과 각각 비기며 한국(승점 3)보다도 낮은 승점으로 16강에 오른 것이 가장 아쉬움을 남긴다. 

아시아 국가들이 선전을 펼치기는 했지만 역시 가장 돋보인 것은 청소년무대의 최강 남미 국가들이었다. 

남미 지역예선 우승국인 콜롬비아는 조별리그 3경기를 모두 2-0으로 승리하는 안정된 전력으로 E조 선두에 올랐고, 디펜딩챔피언 브라질도 2승1무를 거두며 '죽음의 조' F조를 1위로 통과해 2연패 전망을 밝혔다. 

아르헨티나는 1차전에서 미국에 발목을 잡혀 불안한 출발을 보였지만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를 위시한 전 선수들의 화려한 개인기와 스피드가 위력을 떨치며 무난히 조 2위를 차지, 통산 5번째 우승을 노릴만한 전력임을 확인했다. 

C조의 칠레도 조 3위로 와일드카드를 받아 16강에 진출, 남미 지역을 대표하는 4개팀이 모두 16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반면 유럽 국가들은 개최국 네덜란드와 지난 대회 준우승팀 스페인만이 막강 전력을 과시하며 3연승으로 조 1위를 차지했을뿐, 기대를 모았던 스위스가 F조 꼴찌에 떨어지고 독일이 미국, 아르헨티나를 넘지 못하고 간신히 와일드카드를 차지하는 등 고전하는 모습이었다. 

북중미 지역도 미국이 2승1무로 D조 1위에 올라 파란을 일으켰지만 온두라스, 파나마(이상 3패), 캐나다(1무2패) 등은 '동네북'으로 전락해 한계를 실감했다. 
 
한국축구, 조별리그 탈락 아쉬운 사례들 
 
한국의 2005 세계청소년(U-20)축구선수권대회 조별리그 통과가 좌절됐다. 

태극전사들이 거둔 성적은 1승2패(승점3)로 F조 3위. 

반면 A조의 일본은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도(2무1패.승점2) 조 2위를 차지하며 16강행 티켓을 따내 한국으로선 아쉬움이 더 크다. 

한국축구가 조별리그에서 안타깝게 탈락한 것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건 지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허정무 감독의 지휘 아래 이동국, 고종수, 박지성, 이천수 등 역대 최강 멤버를 앞세운 한국은 B조 조별리그에서 2승1패를 기록했다. 

스페인과의 첫 경기서 0-3으로 완패, 불안한 출발을 했지만 이후 모로코와 칠레를 각각 1-0으로 꺾었다. 

하지만 한국(2득 3실)은 칠레(7득 4실) 스페인(6득 3실)과 나란히 2승1패로 승점6을 기록하고도 골득실에서 뒤져 조 3위로 밀려나 8강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당시 C조 1, 2위를 차지한 미국과 카메룬의 승점은 승점 5에 불과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도 두고두고 아쉽다. C조에서 1승1무1패를 기록한 한국은 가나와 승점-골득실까지 동률을 이뤘으나 이번엔 다득점(한국 2득 2실, 가나 4득 4실)에 뒤져 조 3위로 주저앉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이 대회에선 D조에 속했던 일본이 브라질, 나이지리아와 함께 2승1패, 승점6으로 어깨를 나란히 했지만 골득실에서 밀려 조 3위로 눈물을 삼켰다. 

한국은 지난 2000년 1월 미국에서 열린 북중미골드컵대회에서는 어이없이 동전 던지기로 조별리그 통과가 좌절되는 불운을 맛봤다. 

코스타리카, 캐나다와 함께 똑같이 2무를 기록했으나 다득점-골득실-상대팀 간의 전적까지 같았던 캐나다와 동전 던지기까지 벌여 8강 진출권을 내주고 말았다. 

[연합뉴스 2005.06.19] 
 

―1승2패로 결국 조별예선을 넘지 못하고 탈락했다. 첫 경기인 스위스전을 잡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죽음의 조’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끝내 실패한 원인을 진단하자면. 

▲ 일단 브라질 나이지리아 스위스 등의 강호들과 한 조에서 열심히 싸운 청소년팀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무엇보다 상대에 대한 우리의 준비가 철저하지 못했다. F조에서 승부를 걸었어야 할 스위스 전력에 대한 분석이 미흡했다. 상대팀에 대한 정보가 적다보니 자신있는 우리만의 플레이가 나오지 못한 결과로 이어졌다. 3경기 모두 전반 초반의 지나치게 소극적인 경기 운영이 실점으로 이어진 측면이 있다. 물론 승부에 가정은 없지만 결과로만 본다면 초반에 우리만의 스타일로 보다 적극적으로 싸웠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선진 축구의 수준을 아직 넘지 못했다는 뜻인가. 

▲ 그렇다. 3경기 모두에서 드러난 바이지만 한국 청소년팀 선수들의 개인기량은 브라질 나이지리아 등에 비해 한참 뒤쳐졌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우리 선수들의 기술적인 한계를 지적하고 싶다. 아직도 테크닉과 패스의 완급 조절,그리고 정확한 볼컨트롤 등이 세계 레벨에 모자란다. 개개인의 경기 운영능력이 미흡하다보니 템포에서도 상대에게 뒤지는 결과를 낳았다. 볼을 소유하는 능력이 모자라니 자꾸 무리한 롱패스가 이어졌고 상대에게 주도권을 내주게 됐다. 무엇보다 실전,특히 큰 무대에서의 경험이 더 필요하다. 

―나이지리아전 1승이 가진 의미는. 

▲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것을 가장 큰 성과로 꼽겠다. 사실 나이지리아전도 경기 내용에서 우리가 압도한 것은 아니다. 박주영의 동점골도 세트 플레이에서 뽑아낸 것이지 정상적인 공격에서 나온 것이 아니란 점을 유념해야 한다. 하지만 후반 종료 직전에 기적같은 역전승을 일궈낸 ‘경험’이 가져다주는 자산은 어린 선수들에게 크다. 아무리 강한 상대라도 ‘부딪히면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심어줬을 것이고 훗날 이때의 경험을 되살려 더 큰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팀의 에이스 박주영의 플레이에 대해 평가해보자. 나이지리아전에서 보여준 환상 프리킥과 확연히 두드러지는 볼 컨트롤 능력 등이 확실히 또래 선수들에 비해 군계일학이었다. 그의 능력치는 어떤가. 세계 수준에 근접했다고 보는가. 

▲ 박주영은 청소년팀에서 세계 수준에 근접한 거의 유일한 한국 선수다. 이번 대회에서 아르헨티나 브라질 독일 등 강팀들의 경기를 봤지만 공격수 중에서 박주영보다 수준이 높은 인재는 발견하지 못했다. 청소년급에서는 분명 세계적인 레벨이다. 하지만 이번 세계선수권을 맞아 육체적·정신적 피로가 누적된 것은 사실이다. 체력고갈은 집중력이 떨어지는 역효과를 낳는데 국가대표팀 경기에서보다 집중력이 떨어진 모습이 눈에 띄었다. A대표팀과 청소년팀 양쪽에서 모든 걸 요구하는 것이 애초부터 무리였다. 하지만 지친 몸상태를 이겨내면서 동료들과 조화를 이뤄 최선을 다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박항서 스투 해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