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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리만 무성하게 자란 것을 탄식함. 고국의 멸망을
한탄함.
중국 고대 3왕조의 하나인 은(殷)나라의 주왕(紂王)이 음락(淫樂)에 빠져 폭정을 일삼자 이를 지성으로 간(諫)한 신하 중 삼인(三人)으로 불리던 세 왕족이 있었다. 미자(微子), 기자(箕子), 비간(比干)이 그들이다. 미자는 주왕의 형으로서 누차 간(諫)했으나 듣지 않자 국외로 망명했다. 기자(箕子)도 망명했다. 그는 신분을 감추기 위해 거짓 미치광이가 되고 또 노예로까지 전락하기도 했다. 그러나 왕자 비간은 끝까지 간하다가 결국 가슴을 찢기는 극형을 당하고 말았다. 이윽고 주왕은 삼공(三公)의 한 사람이었던 서백[西伯:훗날의 주문왕(周文王) ]의 아들 발(發)에게 주살(誅殺) 당하고 천하는 주왕조(周王朝)로 바뀌었다. 주나라의 시조가 된 무왕(武王) 발(發)은 은왕조(殷王朝)의 봉제사(奉祭祀)를 위해 미자를 송왕(宋王)으로 봉(封)했다. 그리고 기자도 무왕을 보좌하다가 조선왕(朝鮮王)으로 책봉되었다. 이에 앞서 기자가 망명지에서 무왕의 부름을 받고 주나라의 도읍으로 가던 도중 은나라의 옛 도읍지를 지나게 되었다. 번화하던 옛 모습은 간데없고 궁궐터엔 보리와 기장만이 무성했다. 금석지감 (今昔之感)을 금치 못한 기자는 다음과 같은 시 한 수를 읊었다.
벼와 기장도 윤기가 흐르는구나. [禾黍油油兮(화서유유혜)] 교활한 저 철부지[주왕(紂王)]가 [彼狡童兮(피교동해)] 내 말을 듣지 않았음이 슬프구나. [不與我好兮(불여아호혜)] 왜냐하면 진(晉)나라의 무장(武將), 정치가, 학자인 두예(杜預:222∼284)가
그의 저서 '춘추 석례(春秋釋例)'의 주(註)에서 "기자의 무덤이 양(梁)나라의
몽현(夢縣)에 있다"고 적고 있는 만큼 '기자동래설'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임.
[동의어] 亡國之歎(망국지탄). 亡國之恨(망국지한) : 나라가 망함을 탄식함.
[참조] 은감불원(殷鑑不遠). 주지육림(酒池肉林). [출전] 史記 宋微子世家 / 詩經 王風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