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문 앞이 저자를 이룬다는 뜻으로, 권세가나 부잣집
문 앞이 방문객으로 저자를 이루다시피 붐빈다는 말.
전한(前漢) 말, 11대 황제인 애제(哀帝 : B.C 6-1년) 때의 일이다. 애제가 즉위하자 조정의 실권은 대사마(大司馬:국방장관) 왕망(王莽:훗날 전한을 멸하고 신(新)나라를 세움)을 포함한 왕씨 일족으로 부터 역시 외척인 부씨(傅氏:애제의 할머니), 정씨(丁氏:어머니) 두 가문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당시 20세인 애제는 동현(董賢)이라는 미동(美童)과 동성연애에 빠져 국정을 돌보지 않았다. 그래서 중신들이 간(諫)했으나, 마이동풍(馬耳東風)이었다. 그 중 상서 복야 (尙書僕射) 정숭(鄭崇)은 거듭 간하다가 애제에게 미움만 사고 말았다. 그 무렵, 조창(趙昌)이라는 상서령(尙書令)이 있었는데 그는 전형적인 아첨배로 왕실과 인척간인 정숭을 시기하여 모함할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어느날 조창은 애제에게 이렇게 고했다. "폐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정숭(鄭崇)의 집 문 앞이 저자를 이루고 있습니다. [門前成市] 이는 심상치 않은 일이오니 엄중히 문초하시옵소서." 애제는 그 즉시 정숭을 불러 물었다. "듣자니, 그대의 '문전은 저자와 같다[君門如市]'고 하던데 그게 사실이오?" "예, 폐하. '신의 문전은 저자와 같사오나[臣門如市]' 신의 마음은 물같이 깨끗하옵니다. 황공하오나 한 번 더 조사해 주시옵소서." 그러나 애제는 정숭(鄭崇)의 소청을 묵살한 채 옥에 가뒀다. 그러자 사예(司隸)인 손보 (孫寶)가 상소하여 조창의 참언(讒言)을 공박하고 정숭을 변호했으나 애제는 손보를 삭탈관직(削奪官職)하고 서인(庶人)으로 내쳤다. 그리고 정숭(鄭崇)은 그 후 옥에서 죽고 말았다. 尙書令趙昌?諂 素害崇 知其見疏 因奏崇 與宗族通
疑有姦 請治 上責崇曰 君門如市人 何 以欲禁切主上 崇對曰 臣門如市 而臣心如水
願得考覆 上怒下崇獄窮治 死獄中.
[반] 門前雀羅(문전작라) : 문 앞이 새 그물을 칠 정도로 한적하다.
[출전] '漢書' 孫寶傳 鄭崇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