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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백리를 가리킴
한고을의 수령이 부임지로 나갈때나 또는 임기가 끝날때 감사의 표시로 보통 그 고을에서 가장 좋은 말 여덟마리를 바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조선 중종때 송흠(宋欽)이라는 분은 새로 부임해 갈 때 세 마리의 말만 받았으니, 한 필은 본인이 탈 말, 어머니와 아내가 탈 말이 각각 한필 그래서 총3필을 받아 그 당시 사람들이 송흠을 삼마태수라 불렀으니 청백리를 가리킨다. 참고로 고려 충렬왕 때는 임기가 끝나는 부사에게 7필의 말을 바치는 법이 있었는데 최석이라는 승평(지금의 순천)부사는 그 7마리의 말을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애초 받치려던 말이 망아지를 낳아 8마리의 말을 승평고을 백성들에게 돌려주었다. 이에 부민들이 최석의 뜻을 기려 비를 세웠는데 바로 팔마비(八馬碑)다.
지금도 순천을 팔마의 고장이라고 하여 청백리의 고장으로 자부심이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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