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특성 
위치적으로 아산시의 동쪽지역으로 천안과 경계지역이며, 고속철도역사가 있고 경부고속철도의 개통으로 21C 서해안 시대 아산만권 산업.교역의 배후 중심도시로 개발
장항선(천안∼온양온천간)복선 전철 노반개량공사와 역이(정거장)이 구령리에 건립될 예정으로 교통여건 확충
천안∼서해안 연담도시화의 요충도시로써 성장을 위한 각종 도시시설 확충과 지역특성을 고려한 개발 잠재력이 풍부 한 지역
 
현황 
면적 : 47.3㎢ (아산시의 8.7%)
인구수 : 12,503세대 28,982명(2007.9.30현재)
행정구역 : 12법정리, 45행정리, 211반, 59자연마을
법정리 : 중리, 수철리,신흥리,공수리,북수리,회룡리,세출리,갈매리,세교리,휴대리,장재리,구령리

연혁
조선시대 동상면, 동하면
1914. 03. 10 충청남도령 제 3호로 배방면으로 개칭
1986. 01. 01 남리 ⇒ 온양시로 분리
1987. 01. 01 탕정면 구령리 편입
1995. 01. 01 법률 제 4774호로 아산시 배방면으로 개칭
 
< 중리 >
본래 온양군 군내면 지역으로서 소일의 가운데 마을이 되므로 중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서원리, 흑암리, 하리를 병합 하여 배방면에 편입되었으며, 중1리는 인조 12년(1634년)에 시암 조상우 선생이 설화산 동쪽 기슭에 정토서원을 창건하고, 정암 조광조 선생과 퇴계 이황 선생의 위패를 모셔놓고 학문을 강론하였다. 지금 정퇴서원은 없어졌으나 "서원골" 이라는 마을이 있다.

< 수철리 >
본래는 온양군 군내면 지역으로 소일, 쇠일 또는 수철이라하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일헌리, 신대리, 매곡리, 상촌리, 곡촌, 명막리를 병합하여 수철리라하여 배방면에 편입됨.

< 신흥리 >
본래 온양군 군내면 지역으로서 새로 일어난다는 뜻으로 신흥이라 하였 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은곡리, 송현리, 감탁리를 병합하여 다시 신흥리라하여 배방면에 편입됨.

< 공수리 >
공수2리는 조선시대 초기에 그릇 공장으로서 타시.군 시장에 명성이 높아 지게 되었기 이곳에서 나는 그릇을 "옥자기"라 하였고 이곳에 그릇을 사러 온 상인들이 기거하게 되니 주막집이 생기게 되어 차차 동리를 형성하게 되어 지금도 본 부락을 "옥재기"라 칭하고 있으며, 공수3리는 배방산 북부성이 고려시대 쌓았다 하는데 조선시대 당시 성 터의 요새를 살리기 위하여 여러 장군들이 본성을 올라가 좌우를 살필때 작은 산이 근방에 많이 있어 진을 치고 본 부락 근방에서 왜적을 많이 섬멸하였다하여 후세들이 "모산진"이라 하나 현재는 "모산"이라 칭하고 있으며, 공수5리는 배방면사무소 자리에 큰 연못이 있었는데 몇백년 묵은 버드 나무 몇십주와 몇십년 묵은 오동나무가 5주 섰었는데 그를 일컬어 "오류 동"이라 하고 조선조 말 어느 지관은 연못에서 오리가 노는 형국이 마을과 같다하여 "오류동"이라 칭하였다 함.

< 북수리 >
북수2리는 옛날부터 좌우 옆면과 앞 삼면에 내(川)가 있어 보름달이 뜨면 달 구경을 내(川)에서도 할 수 있다하여 "월천리"라 칭하고 있으며 봉강교를 놓기 전에는 이 마을 앞에서 월천(내 건너기)했다하여 현재까 지 "월천리"라 불려지고 있으며, 북수3리는 270여년 전 신씨, 곡씨 두 성이 몇 가구를 형성하여 사는데 조선시대 말엽 당시 대홍수가 일어나 본 부락 앞뜰이 온통 내로 휩쓸어 한 내가 두 갈래로 형성되었는데, 일제 말엽에 하천 제방 공사로 봉강천 을 이루게 되었다하여 "이내(二川)"라고 칭하고 있으며, 북수6리는 1977년 전국에서 처음 시도한 농촌주택 취락구조 개선사업을 본 부락에 이루게 되어 30호 농가를 현대식 주택으로 건립하여 오가는 관광객이나, 공무원 연수생 등 월 2 ∼ 3회씩 견학도 하게되었고 꽃같이 아름다운 동리라 하여 "꽃동네"라 칭하고 있음.

< 회룡리 >
본래 온양군 동상면 지역으로서 지형이 회룡고조(回龍顧祖)로 되었으 므로 회룡리라 하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탑리, 오리, 무학리, 세출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다시 회룡리라 하여 배방면에 편입되었으며, 회룡1리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 후, 눈병이 발생하여 치료차 온양에 오던중 악천후로 이곳 용천으로 잘못 행차하시자, 이곳에 살던 황룡이 사람으로 환생, 온양으로 인도하였다 함. 이곳 용천을 떠나서는 안된다는 계율을 어김으로 인하여 온양읍 용화리에서 살다가 다시 용으로 승천, 돌아갔다고 하여 회룡리라 하였고, 지금도 용천은 기이하리만큼 찬물이 잘 난다고 함.
회룡2리는 회룡리 북방에 위치한 마을로서 약 500년 전부터 당시 왕손 이 세속을 떠나 조그맣게 절을 짓고 수양하였다 하며, 그후 절의 흔적은 없고 탑만 보존되어 있는 마을이라 "탑골"이라하고, 그 옆에는 왕손이 죽은 후 옆에 모셨다고 하여 "능골"이라 칭하고 있음.

< 세출리 >
본래 온양군 동상면 지역으로서 배방산 동쪽이 되는데, 세나리 또는 세출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초산리, 의식리, 무학리 일부를 병합하여 다시 세출리라 하여 배방면에 편입되었으며, 이곳에 세출장상지지(世出將相之地)의 명당이 있어 세출리라 하였다는 설이 있음.

< 갈매리 >
본래 온양군 동상면 지역으로서 지형이 거머리와 같으므로 "그머리" 또는 "갈매"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자우리를 병합 하여 현재까지 "갈매리"라 불리고 있음.

< 세교리 >
본래 온양군 동화면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리, 송성리, 운성리 4 ∼ 5개리를 병합하여 세교의 이름을 따서 세교리라하여 배방면에 편입되었음.

< 휴대리 >
본래 온양군 동화면 지역으로서 휴대 또는 수대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정산리를 병합하여 휴대리라하여 배방면에 편입 되었으며, 휴대1리는 조선시대에 동하리라 불렀는데 조선 말엽 호조 참의를 지낸 맹씨가 이 마을에 거주하면서 본면 중리(동상리)보다는 못하여 일시적 으로 살다 갈 곳이지 영구히 살 곳이 안된다는 평을 하였다하여 "휴대"라 칭하였다 함.

< 장재리 >
본래 온양군 동하면 지역으로서 예전에 대조원(大棗院)이 있었으므로 대추리, 대조원이라 하며, 또 큰 부자가 살았으므로 장재울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송곡리, 소련리, 연동과 천안군 군서면의 송고리 일부를 병합하여 장재리라 하여 배방면에 편입되었으며, 장재4리는 옛날 어느 도인이 쑥고개를 올라가서 언젠가는 이 부락에 연꽃(蓮花)이 필 것이고, 잘 사는 마을이 될 것이라고 예언을 하였다는데 그때부터 "연화고을"이라 칭하였다 함. 그 당시 도인이 말한 자리에 1972 년도 국제방적 주식회사가 설립되어 부락까지 농외소득을 올리게 되자 주민들의 생활이 윤택하게 되었다하여 "연화동"이라 칭하고 있음.

< 구령리 >
본래 온양군 삼북면 지역으로서 구 지형이 구렁이와 같으므로 구렁이 또는 구령이라 하였다 하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수청리, 오 류동 일부를 병합하여 구령리라 하여 아산군 탕정면에 편입되었다가 다시 배방면에 편입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