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라기 선지자의 예언을 끝으로 마침내 예수님이 오시기까지의 400년은
그 어떤 하나님의 계시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 공백 시기를 구약과
신약의 중간에 있다 하여 중간기라 한다. 이 시기는 유대인들이 극도의 영적
고갈에 시달린 때이다. 그 뿐 아니라 저들은 정치적으로도 계속하여 주변 열강들의
손아귀에서 식민지 민족으로의 갖은 고초를 당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타는 목마름으로
선민인 자신들을 해방시켜 주고 세계의 지배자로 만들어 줄 약속된 메시야를
기다렸다.
그러나 여기서 중대한 유대교적 오류가 발생하였다. 즉 그들은 자신들이 선민이 된 것은 구약 구속사의 주역으로서 세계 만민을 위한 신약 구속사와 연결되어 결국 전 구속사의 통로가 되기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자신들만을 영원한 선민으로 구원해 줄 것을 기대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구약이 제시하고 있는 메시야의 본질을 망각하고 유대교적 정치적 메시야만 대망하게 되는 심각한 오류를 범했다. 이 오류는 급기야 마침내 메시야 예수가 오셨을 때 오히려 그를 배척하고 죽이기까지 하는 끔찍한 결말을 초래하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포로기 이후부터 발생된 인본주의적 민족주의적 유대교의 오류로서 구약 성경 자체의 진리가 아니었다. 따라서 우리는 구약 성경에 입각한 구약 참 성도들의 구약 종교와, 구약 일부 내용만을 왜곡한 유대교를 엄밀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한편 400년이란 공백기는 실로 길고도 고통스러운 세월이었다. 이 시기에는
참 성도건 아니건 간에 하나님은 과연 우리를 잊으셨는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구속사는 어찌 되었는가! 하는 의문과 회의에 휩싸였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시기에도 분명히 그리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구속사를 진해시켜 마침내 예수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가 새로 약속하신 구속사의 최종
완성인 천국 구원의 성취가 더디게 느껴질지라도 지금도 명백히 흐르고 있는
구속사의 실체를 바로 깨닫고 인내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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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벨론 시대 (B.C.586-539) - 포로시대 (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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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르시아(바샤) 시대 (B.C.538-) - 포로귀환시대 (은) | |||||||
| 페르시아 시대 (B.C.404-331) - 중간시대 | |||||||
| 333 | 이수스 전투에서 페르시아 패배 | ||||||
| 331 | 알렉산더 대제에 의한 페르시아 (다리오3세) 멸망 | 유대인들이 종교활동에 아무런 장애를 받지 않았음. 대제사장에 의한 유다 식민 통치 | |||||
| 헬라 시대 - 알렉산더 (B.C.336-323) (놋) - (유대지배 BC 332-320, 헬라화, 언어통일) | |||||||
| 336 | 알렉산더 대제의 등장 | 유대인들의 율법 이행 허용
조공과 세금의 면제(안식년) 헬라인들의 특권을 유대인들에게도 동일시 적용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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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1 | 팔레스틴, 애굽을 비롯한 정복사업 | ||||||
| 헬라 시대 - 프톨레미 왕조 (B.C.301-201) - (BC 320-198) | |||||||
| 301 | 알렉산더 사후 4장군에 의한 제국 분할 통치 | .프톨레미-이집트 지역
.셀레우코스-바벨론 지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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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2 | 프톨레미 II세의 등극 | 히브리어 성경이 헬라어 성경(70인역)으로 번역 | |||||
| 헬라 시대 - 셀류크스 왕조 (B.C.198-167) - (BC 198-164) | |||||||
| 198 | 앗수르 바벨론 통치자 셀레우코스 왕조 | 헬라 잔존세력간의 권력다툼 끝에 셀류크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III세가 팔레스틴을 차지함 | |||||
| 167 | 안티오쿠스 IV세의 유대인 탄압
(약탈한 금.은 등을 로마에 조공바침) |
성전 모독, 약탈 (성전 장식물 등)
헬라화, 안식일 금지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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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유대시대 - 마카비 혁명 (B.C.166-143) - (BC 164-63) | |||||||
| 166 | 제사장 맛다디아의 반란 | 헬라화 정책 반대 투쟁, 마카비 혁명의 시초 | |||||
| 맛다디아의 아들 유다(마카비)에 의해 혁명의 본격화 | |||||||
| 165 | 예루살렘 성전 청결작업 | 기념 - 수전절 | |||||
| 마카비 운동 - 율법지키기 | |||||||
| 독립유대시대 - 하스몬(하스모니안) 왕조 (B.C.142-67) | |||||||
| 142 | 로마의 유대 돕립권 인정 | ||||||
| 134 | 하스모니안 왕조가 에돔정복 | ||||||
| 103 | 알렉산더 얀네우스의 등극 | 다윗시대의 영토회복 | |||||
| 94 | 바리새인의 대 반란 | 바리새인 6천명 학살로 인함 | |||||
| 에돔 총독에 안티파스 임명 | 헤롯(대헤롯 마2:1-12)의 조부 | ||||||
| 헤롯 왕조 - 마카비 왕조에 반역 | 로마세력을 바탕으로 | ||||||
| 로마시대 (B.C.63-4) (철) | |||||||
| 63 | 로마 장군 폼페이의 예루살렘 점령 (마카비의 힐카누스 2세 항복후 대제사장으로 임명됨) | 로마의 통치는 A.D. 70년 예루살렘 함락, A.D. 130년경의 전 유대인 강제 추방 정책 실시 후 제국 말기까지 계속됨 | |||||
| 안티파터를 유대지역 집정관으로 임명 | 안티파스의 子, (대)헤롯의 父 | ||||||
| 가이샤(시저)가 폼페이를 이집트에서 죽이고 패권 차지 | 힐카누스2세 - 지역의 총독
안티파터 - 유대의 행정관 (소)헤롯 - 갈릴리 총독으로 임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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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
57 |
해모수 북부여 건국
신라 혁거세 거서간 즉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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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 | 가이샤가 부루투스에 의해 살해됨 | ||||||
| 37 | 주몽 고구려 건국 | ||||||
| 37 | (대)헤롯의
유대 통치
-이두매(에돔) 출신으로 BC. 4년 까지 통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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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 헤롯의 예루살렘 성전 건축 | ||||||
| 옥타비아누스가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연합군 격퇴후 (악티움해전) 1대 황제가 됨 | 황제=아우구스투스=아구스도=가이샤 | ||||||
| 18 | 온조 하남위례성 백제 건국 | ||||||
| 4 | 예수님 탄생 | ||||||
| 4 | (대)헤롯
사망 - 아들 3명에게 분봉왕으로 임명
-헤롯 안티파스: 갈릴리와 베레아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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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대인의 반발로 아켈라오를 로마로 소환후 유대지역에
총독 임명
- 대제사장을 임명직으로 (뇌물수수) - 안나스(재물장사 - 실권) 와 가야바 (안나스사위 - 법적) 2명의 대제사장 |
코포니우스 - 마르쿠스 얌비불루스 - 아니우스 루푸스 - 발레리우스 그라투스 - 폰티우스 필라투스 (본디오 빌라도, 5대 AD. 26-36) | ||||||
| 산헤드린 공의회 : 유대인 자치기구 | 의결기관, 종교재판소, 71인으로 구성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 등) | ||||||
| 사두개파 - 대제사장파(성전문화주도)
바리새파 - 성경연구(서기관, 에스라계) 열심당 - 무기로 정복하는 메시야도래 에센파 - 수도원운동(세속은 싫다) |
사두개-기득권세력
바리새-유대교, 서기관(성경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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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라기 선지자 때부터 예수께서 태어나실 때까지를 신구약 중간기라고 부릅니다.
이 시기에 대한 기록은 성경에는 없지만, 마카비서라고 부르는 외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말라기 시대 이후부터 주전 331년까지는 계속해서 페르시아가 세계를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주전 331년에 헬라의 알렉산더가 페르시아를 정복함으로 세계는 다시 헬라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알렉산더는 젊은 나이로 전 세계를 정복했으나 얼마 있지 않아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가 죽은 후에 4병의 장군들이 그 영토를 나누어 다스렸습니다. 그 중에 톨레미는 애굽을 차지했으며, 셀류코스는 수리아를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은 이 두 사이에 끼여 있었기 때문에 이 두 세력에 의해 지배를 당했습니다. 후에 수리아의 왕 중에 하나인 에피파네스 4세가 예루살렘을 정복했습니다. 그는 성전을 크게 모독하고 성전에 우상을 세우고 돼지 피로 제사를 드리게 했습니다. 또한 그는 유대인들이 율법을 준수하는 일을 금했습니다. 이로 인해 경건한 유대 백성들을 중심으로 마카비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그 후에 그들은 수리아 군사를 내쫓고 성전을 다시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주전 165년경 유대는 수리아의 지배하에서 어느 정도 자치권을 얻어 자유롭게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전 63년에 로마의 폼페이 장군이 수리아를 정복하면서 예루살렘은 로마의 속국으로 편입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주전 40년경 이방인 헤롯이 로마를 등에 업고 유다 족속을 몰아내고 자신이 왕이 되었습니다. 일찍이 야곱은 유다에서 통치자가 나올 것이며 그것을 실로가 오실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유다 자손이 왕에서 쫓겨나고 이방인 헤롯이 유대의 왕이 되었을 그 때에 약속하신 메시아를 보내 주셨습니다. - 최영찬 목사 |